멕시코 주류업체 가동 멈추자
수요 폭증에 암시장까지 형성
코로나 진정되며 봉쇄 풀리자
동남아선 음주운전ㆍ사재기 이어져
“멕시코가 메말라 가고 있다.”
가뭄 이야기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맥주 생산이 중단된 멕시코 ‘주당’들의 하소연이다. 공급은 줄었는데 집 안에 갇혀 술 마시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 수요는 폭증하다보니 밀거래가 성행할 조짐마저 일고 있다. 반대로 일부 봉쇄가 풀린 동남아시아에서는 음주 사고와 술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건강은 물론 감염병 확산에도 전혀 도움이 될 리 없지만, 술 고픈 국민을 달래느라 각국 정부들만 이래저래 고민에 빠졌다.
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는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3월 말 비필수 활동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로나’ ‘에스트레야’를 생산하는 그루포 모델로와 ‘도스에키스’를 제조하는 하이네켄 멕시코 등 주류업체도 가동을 멈췄다. 지난달은 재고 물량으로 어찌어찌 버텼으나 통제 조치가 계속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심지어 몰래 맥주를 거래하는 ‘암시장’까지 생겨났다. 미국 접경지역인 티후아나 암시장에서는 맥주 한 캔 가격이 27페소(약 1,390원)에 달한다. 이 지역의 일일 최저임금(8시간 기준)은 185.5페소(약 9,560원). 한 시간을 꼬박 일해도 맥주 한 캔조차 사먹을 수 없게 된 셈이다. 멕시코의 연간 맥주 소비량은 세계 4위권이다.
여전히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미국도 품귀 현상만 없을 뿐, 사정은 다르지 않다. 노스캐롤라이나주(州)의 메클랜버그 카운티 주류통제위원회 집계 결과, 지난달 식당ㆍ주점의 주류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500만달러 줄었다. 반면 개인 상대 매출은 120만달러 증가했다. 미 유타대 조사에서도 3월 주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0% 늘었다. 주류 전자상거래 업체 드리즐리는 “알코올 음료의 수요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매출이 예상치보다 400% 폭증했고 신규 고객도 40% 늘었다”고 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이고 있는 동남아에서는 술 판매가 허용되자 사건ㆍ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10일 베트남 일간 뚜오이째와 태국 일간 방콕포스트 등 현지 매체 보도를 보면 베트남에선 지난달 31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황금연휴 기간 전국적으로 1,380건의 음주운전이 적발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단속 공백이 결정타였다. 3일부터 주류판매 금지를 해제한 태국에서는 주류판매소마다 할당량 이상의 술을 사재기하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이 아무리 술을 원해도 음주는 감염병에 악재밖에 안돼 각국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선 술을 마시면 면역체계가 손상돼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하기 쉽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부는 지난달 “도수가 높은 술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킨다는 잘못된 정보가 돌고 있다”며 “알코올은 건강에 악영향만 미칠 뿐”이라고 경고했다.
또 ‘혼술’이 아닌 바에야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어 음주는 코로나19 확산에 최악의 환경을 제공한다. 9일부터 2주간 주류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린 캐나다 서스캐처원주는 “시민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운전도 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진다”고 금지 이유를 설명했다. 스콧 모에 주총리는 청년들을 향해 “지역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임감 있게 행동해 달라”고 호소했다.
무절제와 코로나19 재유행이 우려되자 태국 정부는 금주령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방콕 당국은 8일 “주류 판매점이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 등을 계속 무시하면 지체 없이 폐쇄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베트남 정부도 “집단 음주문화가 코로나19 재확산을 불러올 수 있다”며 “순찰 횟수를 늘리고 더 엄격히 음주운전자를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술 없이 살 수 없는 지구촌 시민들이 정부의 엄포를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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