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곳곳에서 눈비가 내렸고, 꽤 스산했던 날로 기억된다. 40대를 향한 고용한파가 심상치 않다는 분석 기사들과 히말라야에서 교사들이 실종됐다는 소식. 그리고 신격호 롯데 창업주가 전날 별세했다는 부고가 뒤섞인 1월 20일의 공기는 불길했다. ‘우한폐렴 첫 확진자’라는 말은 이날 오전부터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로 오르내렸고, 오후 마침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국내 상륙이 공식화됐다. 이후 100일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1만874명이 신종 코로나를 앓아 이 가운데 9,610명이 일상으로 돌아왔고, 256명은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10일 오전 기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던 2020년 겨울은 실상 어느 해보다 추웠다.
매서운 신종 코로나의 기세는 이후 오래도록 확진자와 그들의 가족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 적시에 위험지역으로부터의 입국 금지를 시행하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안타까움, 하루 900명 이상 쏟아지는 확진자 앞에 주저앉은 의료시스템, 기록적인 실업률과 성장률 전망 하락, 그리고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들 앞에 우리는 미래를 잃은 듯 휘청거려야 했다.
마침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단지 당국의 근면함과 기발함이 효력을 발휘해서만은 아니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병든 노모를 먼발치서 지켜보기만 하고 돌아서야 했던 자식들, 휴가 없는 병영생활을 꿋꿋이 견뎠던 병사들, 자녀의 온라인수업을 챙기며 고된 일상을 이 악물고 참아낸 엄마들. 이들 시민 하나하나의 희생과 인내가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를 늦춰졌고, 그 사이 당국은 부족한 병상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의료진은 힘을 비축했다. 이달 초 목격한 지역사회 감염 ‘0’의 행진은 개개인의 피땀이 모여 도달할 수 있었던 공든 탑의 정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넘어섰고, 터널을 빠져 나왔다고 믿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늦은 새 학기에 설렜고, 주말의 도로는 고맙게도 다시 밀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13일부터 시작되는 아이들의 등교수업을 가로막을 모든 장애물이 깨끗이 치워진 듯했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었다. 맑아진 물에 기어코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신종 코로나는 그저 웅크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수비태세가 흐트러지자마자 일격을 날렸다.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을 시작으로 두 번째 라운드의 공이 울렸다.
신종 코로나와의 싸움이 1라운드만으로 끝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은 안타깝다. 한동안 하루 30명 이상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정해놓은 기준에 따르면 하루 평균 확진자가 50명 이상으로 넘어가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터널 속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를 일이다. 아이들의 교실은 더 오래 비워둬야 할 수 있다. 경제는 또 찬물을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다시 링에 오르는 우리 사회가 지난 2, 3월처럼 속절없이 무너질 리는 만무하다. 큰 싸움을 치르는 동안 신종 코로나가 어떻게 우리의 시스템을 위협하고, 사람들을 쓰러트렸는지 경험으로 습득했다. 선별진료소, 마스크 5부제, 생활치료센터를 놓고 사회적 논쟁을 벌이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사라졌다. 단단한 검이 되기 위한 담금질은 충분히 버텨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얼마 전 “2월 말처럼 우리가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비쳤다. 일어선 적과 맞서면 될 일이다.
다만 안심은 금물이다. 신종 코로나는 가드가 내려지는 순간, 우리의 인중을 언제라도 정확히 가격할 수 있다. 마지막 공이 울리고, 승자의 손이 올라가기까지 힘을 빼지 말아야 한다. 방역은 과할수록 좋다. 정말 끝나야 끝나는 것이다.
양홍주 정책사회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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