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로큰롤 시대를 이끌었던 선구자 리틀 리처드(본명 리처드 웨인 페니먼)가 9일(현지시간)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고 AP통신, LA타임스 등 미국 언론이 고인의 아들 대니 존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향년 87세.
리처드의 과거 에이전트였던 딕 앨런도 리처드가 이날 미 테네시주의 내슈빌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싱어송라이터로 ‘투티 프루티(Tutti Frutti)’ ‘롱 톨 샐리(Long Tall Sally)’ 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그는 비틀스와 롤링스톤스를 오프닝 밴드로 대동하고 유럽 투어를 돌았으며, 한때 지미 헨드릭스를 자신의 밴드에 기타리스트로 기용했던 ‘전설의 전설’이었다.
고인은 로큰롤이 태동하던 시기에 당시로선 혁신적인 쇼맨십과 연주, 창법으로 후대 가수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샤우팅 창법, 엘튼 존의 강렬한 피아노 타건, 제임스 브라운의 화려한 쇼맨십, 프린스의 양성적 이미지는 모두 리처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매카트니는 “대중 앞에서 처음 부른 노래가 ‘롱 톨 샐리’였다”고 했고, 밥 딜런은 고교 졸업앨범에 자신의 야망을 “리틀 리처드의 밴드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적었다.
20세기 대중음악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는 ‘로큰롤의 혁신가’ ‘로큰롤의 창시자’ ‘로큰롤의 설계자’ 등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리며 오래도록 존경받았다. 리처드는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1990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2003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각각 올랐다.
그는 음악으로 인종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미국 사회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만 해도 공연장 객석이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의 공연이 끝날 때면 매번 백인과 흑인이 뒤섞여 열광했다. 그는 생전에 인터뷰에서 “나는 언제나 로큰롤이 모든 인종을 화합하도록 해준다고 생각해왔다”며 “특히나 인종 간의 장벽이 있던 남부 출신이지만 우리 흑인들을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이 모든 사람들이 이토록 나를 사랑해줬다”고 말했다.
1932년 교회 집사이자 벽돌공이었던 아버지와 독실한 침례교 신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리처드는 어릴 때부터 가스펠 가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중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고교 진학 대신 밴드에 들어가 리듬앤드블루스(R&B)를 부르며 드래그(남성이 예술이나 오락, 유희를 목적으로 여장을 하는 것) 연출까지 하면서 퍼포머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선배 가수들에게서 앞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빗어 넘겨 이마를 내놓는 퐁파두르 머리 모양부터 화려한 스타일, 가수로서 쇼맨십을 배운 그는 강렬한 목소리 덕에 일찍부터 음악 산업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1950년대 초반 대형 음반사였던 RCA빅터를 시작으로 피콕레코즈 등과 계약하고 몇 장의 싱글을 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음악 활동을 이어가던 리처드는 1955년 스페셜티 레코즈와 계약한 후 ‘투티 프루티’를 히트시키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스페셜티에서 그는 9곡의 빌보드 톱40 히트곡을 냈고,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이자 불후의 명반으로 꼽히는 ‘히어즈 리틀 리처드(Here’s Little Richard)’ 등 3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내놓았다.
1957년 구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자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세속의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회개했다는 그는 이후 대중음악과 종교를 오가며 몇 차례 은퇴와 컴백을 반복했다. 스페셜티를 나온 뒤엔 이전만큼의 히트곡을 내지 못했지만 가스펠 앨범을 포함해 16장의 앨범을 더 내며 200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리처드의 타계 소식에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이 잇달아 애도를 표했다.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는 “그는 내 10대 시절 가장 큰 영감을 줬던 인물이고 훗날 함께 무대에 오를 땐 매일 저녁 그의 몸짓을 보며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법을 배웠다”며 “그는 대중음악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그는 로큰롤의 태동기에 활동하며 우리에게 어떻게 로큰롤을 하는지 보여줬다”며 “그의 재능은 정말이지 대단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엘튼 존은 “음악이나 보컬, 비주얼 측면에서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며 “그는 진정한 전설이자 아이콘이고 자연의 힘 같은 존재였다”고 칭송했다.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도 “리처드의 음악은 로큰롤을 개척했다”고 치켜세웠고, 너바나와 푸 파이터스의 데이브 그롤은 “내게 그는 로큰롤 역사상 가장 즐겁고 저항적인 혁신가였다”며 “그러한 음악의 씨를 뿌려준 데 대해 감사하다. 당신의 음악 덕에 세상은 훨씬 더 행복해졌다”고 추모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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