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LG화학 공장 가스누출 사고로 최소 12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관리 소홀과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올랐다. 36년 전 유독가스 유출로 3,800명 가까이 숨지는 최악의 사고를 겪은 뒤 수도 없이 관련 규정을 정비했지만 전문가들이 지적해온 관리 사각지대가 여전히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중앙ㆍ주(州)정부와 기업 모두 참사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9일 인도 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TOI)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사카파트남 소재 LG폴리머스 공장에서 이틀 전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로 이날까지 12명이 숨졌다. 또 사고 당시 눈 따가움과 호흡 곤란 등을 호소했던 인근 주민들 가운데 300여명이 아직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지난 7일 오전 2시30분쯤 LG폴리머스 공장의 5,000톤급 탱크 2대에서 기화한 스티렌모노머가 유출되면서 발생했다. 가스 안개는 공장 반경 3~5㎞까지 퍼졌다. 현지 소방당국과 경찰은 공히 사고 탱크 내부의 냉각장치 오작동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스티렌모노머는 대체로 20도 이하에서 안전한 액체 상태인데 가스 안개가 널리 퍼졌던 것으로 미뤄 냉각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 스티렌모노머가 기화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공장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멈췄던 공장의 재가동을 준비하던 중 가스가 유출됐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이 규명돼야 책임 소재도 분명하게 가려지겠지만, 인도 현지에선 이미 이번 사고를 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인재(人災)’로 여기는 시각이 많다. 그간 숱하게 유독가스 유출 참사를 겪으면서 관련 법ㆍ제도를 정비해오는 동안 문제로 지적됐던 사항들이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국민들에게는 ‘보팔 참사’가 여전한 트라우마다. 1984년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에 위치한 미국 살충제 공장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로 당시 사망자가 3,800명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는 공식 통계일 뿐 실제로는 그보다 2배 이상 더 많을 것이란 추정까지 나온다. 이후 중앙정부는 보팔가스누출법ㆍ국가환경상소청법 등 각종 안전관리법을 제ㆍ개정해왔다.
그러나 소방ㆍ방재분야 전문가들이 줄곧 주장해온 ‘제3자 감사’ 제도는 아직까지도 도입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과 기업 간 유착 의혹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감안해 기업의 안전시설 점검 과정에 전문가그룹을 참여시키자는 주장이 계속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외국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지방정부 간 과열 경쟁, 위험도 높은 화학분야 글로벌 대기업들의 전방위 로비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그 결과 2010년대 이후만 해도 인도 전역을 발칵 뒤집은 가스ㆍ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이번이 다섯 번째다. 2011년에는 마하라슈트라주 푸네 소재 폐수처리장에서 염소가스가 누출돼 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3년 뒤인 2014년에는 차티스가르주 두르그 소재 공장에서 유사 사고로 6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쳤다. 2018년에는 뭄바이의 한 공장에서 암모니아가스를 들이마신 14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지난해에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 소재 공장에서 화학물질이 누출돼 21명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번 LG화학 공장 사고와 관련해선 지난해 환경부의 허가 없이 LG화학이 주정부로부터 주거지 인근에 공장 부지 확대를 승인받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에 환경오염 및 오염물질 배출을 우려한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컸고 중앙정부도 비판여론을 의식해 공장 부지 확대를 사실상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EAS 사르마 전 인도 에너지장관은 YS 자간모한 레디 안드라프라데시주 주총리에 보낸 서신에서 “주공해관리위원회가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주거지역과 밀접한 해당 부지에 공장이 들어서는 걸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번 참사의 경우 대규모 인명피해 때문에 국민들의 반발과 비판이 커지자 중앙ㆍ주정부는 LG화학 측의 과실을 강조하며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이다. 레디 주총리는 “LG폴리머스가 공장의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부 환경부 측도 “조사 결과 환경 규정 위반이 확인되면 공장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LG폴리머스는 인도 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43일간 공장을 봉쇄했다가 지난 4일부터 운영을 정상화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참사가 발생한 공장에서는 3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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