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및 기초과학 연구의 핵심장비로 1조원대 사업비가 투입되는 방사광가속기가 충북 청주시에 들어선다. 전남 나주시와 최종 경합했던 청주는 탁월한 지리적 접근성을 평가 받아 시설 유치에 성공했다.
전자를 가속해 만들어낸 고속의 빛(방사광)으로 물질의 미세구조를 볼 수 있어 '꿈의 현미경'으로도 불리는 방사광가속기는 향후 신약,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등 미래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청주 ‘빼어난 입지’로 유치 성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일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을 시행할 지역으로 충북 청주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선정평가위원회는 지난 6일 유치계획서를 낸 4곳(강원 춘천, 경북 포함, 전남 나주, 충북 청주) 가운데 청주와 나주를 최종후보로 압축하고 7일 두 지역에 대한 최종 현장점검을 진행했다.
정병선 1차관은 "청주는 평가항목 전반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특히 지리적 여건, 발전가능성 분야 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청주는 한반도 복판에 위치해 있고 고속도로, KTX, 국제공항 등 교통인프라가 뛰어나 유력 후보지로 꼽혀왔다. 국내 기초과학의 메카 대덕연구단지는 물론이고 반도체 의료 화학 등 방사광가속기 활용도가 높은 산업이 청주와 가까운 수도권 및 충청권에 집중된 점도 장점이다.
부지 선정을 마친 과기부는 연내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하고 늦어도 2022년에는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2027년쯤 가속기가 구축되고 이듬해 운영에 들어간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방사광가속기 사업으로 고용 13만7,000명, 생산 6조7,000억원, 부가가치 2조4,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볼 것으로 추산한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방사광가속기의 연구 성과가 전국에 골고루 확산돼 균형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형ㆍ원형 가속기 겸비 시너지 기대
청주에 들어설 방사광가속기는 4세대 원형 가속기로 분류된다. 둘레가 약 800m에 이르는 거대한 원 모양으로, 3세대 가속기보다 빛의 집중도가 100배 높아 더 작은 물질구조 관찰이 가능하다. 포스텍 포항가속기연구소가 운영 중인 기존 국내 방사광가속기 2종은 각각 길이 약 1,100m의 커다란 막대 형태(선형)인 4세대와 둘레 약 280m의 원형인 3세대다.
정부 계획대로 2027년 신규 가속기가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4세대 원형과 선형 방사광가속기를 모두 보유하게 된다. 4세대 선형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현재 4세대 원형을 각각 설계, 계획 중이고, 중국은 4세대 선형과 원형을 동시에 짓고 있다.
산업계와 과학계는 원형 및 선형 방사광가속기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지금까지 기술적 한계 때문에 불가능했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0피코초(1피코초=1조분의 1초)에 불과한 찰나의 시간 동안 빛을 발생시키는 4세대 가속기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아 있는 바이러스의 단백질이 세포와 만나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식물이 햇빛을 받아 어떤 과정을 거쳐 산소를 내뿜는지 등을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
원형 가속기가 만드는 빛은 선형보다 속도가 느린 대신 에너지가 높다. 이는 구조가 복잡한 정지 상태의 물체를 변형하지 않고 내부를 관찰하는 데 적합하다. 1990년대 LNG선박용 철판 개발 과정에서 철판이 자꾸 깨져 애를 먹던 포스코가 원형 가속기를 통해 국산 철판 내부에 주석 성분이 많다는 점을 알아내기도 했다.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은 “연구 영역을 달리 설정해 서로 돕고 선의의 경쟁을 하며 첨단 과학과 산업 발달을 이끄는 방향으로 포항과 청주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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