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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덕질’하는 시니어, ‘오팔 세대’가 온다

입력
2020.05.11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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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 시니어가 달라졌다. 요즘 노년층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알려진 ‘덕질’을 즐긴다. 트롯 스타 송가인씨의 노래를 듣기 위해 스마트폰 활용법을 배우고, 음원 사이트에서 좋아하는 노래 순위를 올리고자 무한 스트리밍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아이돌 팬처럼 연예인에게 각종 선물을 보내는 조공도 한다. 통념 속의 시니어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요즘 50~60대는 자신을 조금 나이든 30~40대라고 생각하지 시니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10%대에 육박할 시기에 청장년기를 보냈다. 은퇴를 계획적으로 준비한 첫 세대로 보유 자산도 역대 노년층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찾는 사람도 많아 수입 변동성도 크지 않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을 최초로 사용했으며 삐삐에서부터 휴대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최신 기술의 발전 과정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달라진 50~60대들엔 실버, 그레이, 시니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달라진 50~60대를 일컫는 ‘오팔 세대’라는 신조어도 발표했다. 오팔(OPAL)은 ‘삶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노년층(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의 영문 약자다.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58년생 개띠’를 뜻하기도 한다. 사파이어의 파랑, 에메랄드의 초록, 황옥의 노랑, 루비의 빨강과 자수정의 보라색 등 모든 보석의 색을 품고 있어 가장 완전한 보석이라 불리는 ‘오팔 보석’과도 이름이 겹친다.

오팔 보석처럼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신노년층, 오팔 세대는 이제 대한민국 소비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우선 이들의 소비는 상당히 젊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사용하던 화장품, 가전 브랜드를 자녀가 따라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님의 소비를 자녀가 학습한다고 해서 ‘소비의 사회화’라고도 한다. 반면, 요즘 오팔 세대는 드럭스토어를 방문해 립스틱을 구매하고, 밀레니얼 자녀 사이에서 유행하는 무선 청소기를 따라 사기도 한다. 자녀의 소비가 부모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소비의 대올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시니어는 저축을 좋아하고 소비를 싫어한다는 고정관념도 오팔 세대엔 통하지 않는다. 요즘 50~60대는 충동구매, 즉흥구매를 의외로 즐긴다. 친구들과 모여 커피를 마시다가 남해가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길로 짐을 싸 출발하는 즉흥여행족이기도 하다. 혁신 제품과 서비스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직접 목도한 세대이므로 구매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소비 경험이 많은 만큼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알아보는 안목도 있어 소비자신감도 높은 편이다.

트렌드에 대해서도 어느 세대보다 관심이 많다.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가 하면, 요즘 패션계에서 어떤 색상이 유행하는지, 인기 있는 운동화 모델은 무엇인지 줄줄 꾀고 있다. 젊은 세대와 오팔 세대와의 차이를 굳이 꼽자면, 젊은 세대는 SNS를 각종 정보를 얻는 채널로 활용하는 반면, 오팔 세대는 홈쇼핑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밴드 등을 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나서는 젊은 세대에 비해 오팔 세대는 정보를 요약해 알려 주는 시스템을 더 선호한다.

인구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 기업에 오팔 세대는 분명 매력적인 시장이다. 중요한 사실은 오팔 세대를 특별한 집단으로 분류하기보다는 이들이 시장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보편적 아이디어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카카오톡, 유튜브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 가능한 편의성을 기반으로 성장한 것처럼, 노인을 위한 산업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노년층을 젊은 세대와 동일한 욕구를 가진 소비자로 배려하는 오팔 세대 성공 모델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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