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상? 전세계가 주목한 김정은의 잠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중순 이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자 신변을 둘러싼 여러 추측성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급기야 지난달 21일 미국 CNN이 중태설을 제기하면서 논란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탈북민 출신 태영호(미래통합당)ㆍ지성호(미래한국당) 국회의원 당선자도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을 제기하면서 논란에 가세했다. 북한이 2일 김 위원장의 평남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모습을 공개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변 문제가 한반도 주변 안보에 상당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이 확산된 배경과 이를 통해 드러난 여러 논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청와대팀, 외교안보팀, 국회팀 기자들이 카톡방에 모였다.
나를 돌아봐(돌아봐)= 4월 21일부터 2주간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김정은 위원장 건강이상설이 사실상 ‘가짜뉴스’로 확인됐습니다. 이번 소동은 왜 벌어진 건가요.
평화의 비둘기(비둘기)= 소동의 시작은 CNN 보도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중태에 빠졌다는 첩보를 미국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는 CNN 속보 후 국내외 언론도 이를 긴급 타전했습니다. 하루 전인 지난달 20일 북한 전문 언론 매체인 데일리NK가 ‘김 위원장이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을 땐 반향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력한 언론사인 CNN이 미국 정보당국까지 거론한 보도를 내놓자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도 술렁거리기 시작한 것이죠. 청와대가 “특이동향이 없다”며 5시간 만에 보도 내용을 부인했고, 정보당국은 김 위원장의 ‘원산체류설’에 무게를 실었지만 지난 2일 노동신문 보도로 김 위원장 건재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온갖 설들이 나돌았습니다.
돌아봐= 북한 지도자 건강이상설에 청와대가 소상한 설명을 내놓은 것도 이례적이었죠. 그럼에도 뇌사설, 사망설 등 추측성 보도는 계속됐지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당나귀)= 청와대 등 정부 당국은 데일리NK의 첫 보도 때부터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은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물론 안보 사안인 만큼 말을 아끼기도 했지만 관련한 구체적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까지 일부에서 나올 정도였습니다.
비둘기= 정부가 김 위원장의 신변과 관련해 “특이동향이 없다”고 확언한 것은 군과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이 각각 수집한 정보와 분석이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인적(휴민트)ㆍ기술적(테킨트) 방법으로 크로스체크도 계속 했다고 해요. 북한 최고위층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평양 시내 경계가 강화되고, 군사 이동이 늘어나고, 통신량이 급증하는 등 여러 징후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동향도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여의도 뚜벅이(뚜벅이)= 국정원도 6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보고에서 유사한 보고를 했습니다. 김 위원장 잠행이 길었지만 이는 건강 문제라기보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보당국 판단이기도 했죠.
돌아봐= 김 위원장이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등장한 모습을 북한 관영매체가 2일 공개했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게 있었나요.
비둘기= 북한도 전 세계가 주목한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에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한 걸로 보입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그동안 최고지도자 현지지도 모습을 주로 사진으로 공개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조선중앙TV가 15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여러 차례 방송했어요. 김 위원장이 멀쩡하게 걷는 모습이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사실상 건강이상설 ‘해명 방송’ 같았죠. 적절한 연출 장소와 시기를 찾느라 열흘 넘게 침묵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돌아봐=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 증폭 과정에서 태영호, 지성호 국회의원 당선자 발언도 논란이 컸죠.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김정은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태영호) “김정은의 사망을 99% 확신한다”(지성호) 등의 발언은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큰 문제는 아니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들의 위치, 특히 태 당선자는 북한 고위직, 특히 영국 주재 대사관 공사 출신이라 더 신빙성 있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국회 입성 전부터 잘못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건 경솔했지만, 여당에서 제기된 국회 정보위나 국방위 등 특정 상임위 배제를 주장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뚜벅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발언’은 문제였죠. 두 당선자는 아마도 자신들만이 연락할 수 있는 북한 내ㆍ외부 사람의 정보를 지나치게 믿은 듯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정보원 정도라면 북한의 최고지도자 행보 관련 정보까지 닿지는 못할 가능성이 아주 많죠. 또 하나는 발언하는 위치의 문제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발언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무게감을 갖는지 잊은 듯 합니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걸어 다니는 헌법기관이라는 점을 아직 파악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여당 인사들이 나서서 특정 상임위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또 다른 차별 발언이라는 얘기가 나왔죠.
돌아봐= 북한이 김 위원장의 모습을 공개한 다음날인 3일 강원 철원 인근의 중부전선 감시초소(GP)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의도적 도발이냐, 우발적 오발이냐 논란이 일었는데요.
밥 먹었더니 배불러= 김 위원장 건재 과시와 GP총격은 일단 별개의 사건입니다. 김 위원장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 보다 규모가 큰 사안이어야 한다는 분석이 많았죠. 북한 입장에서도 ‘최고존엄’인 김 위원장의 건재를 겨우 GP 총격으로 알리려 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겁니다. 김 위원장의 모습이 공개된 직후에 총격 사건이 일어난 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 거죠. 다만 합동참모본부가 총격 사건 이후 대응 시간 등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등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아 의혹을 샀던 건 사실입니다.
비둘기= 군 당국은 총격 발생 당시가 북측 GP 인원이 근무교대 뒤 화기 점검을 하는 시간대였고, 북측 화기가 총알이 장전된 상태로 고정 거치돼 있는 등 여러 정보를 종합할 때 오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도발이냐, 오발이냐를 떠나 생각해볼 점도 있습니다. 남북이 서로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9·19 군사합의를 통해 약속했지만, 현재도 남북 모두 GP에 중화기를 반입해 서로를 향해 고정 거치해 뒀으니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 위험 해소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돌아봐= 김 위원장 신변 문제가 동북아 정세 자체를 뒤흔드는 변수가 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만큼 북한 체제,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의 불안정성도 확인됐는데요.
당나귀= 인포데믹(잘못된 정보가 감염병처럼 퍼지는 일)으로 끝났지만 논란 과정에서 정상 간 탑다운(Top-Down) 방식에 의존하는 남북관계의 리스크가 확인된 측면도 있습니다. 1인 지배체제인 북한에서 지도자가 사라지는 경우 어떤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컸던 시간이니까요.
비둘기= 김 위원장이 30대이지만 고도비만인 데다 유전으로 인한 심장병 위험도 있어 건강 관련 의혹 제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는 이번 인포데믹 상황을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제기했습니다. 분단국가로서 ‘안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북한에 대한 편견ㆍ경멸 확산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큰 만큼 북한 관련 정보는 조금 더 신중히 살피고, 반응ㆍ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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