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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주교단 “우리 정부도 기후 위기비상 사태 선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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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주교단 “우리 정부도 기후 위기비상 사태 선포를”

입력
2020.05.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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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회칙 반포 5주년 앞두고 성명 통해 호소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 기념 공동 기도문. 천주교주교회의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 기념 공동 기도문. 천주교주교회의 제공

한국 천주교 주교단이 8일 정부를 상대로 ‘기후위기 비상 사태’를 선포하라고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 받으소서’ 반포 5주년 기념 주간을 앞두고서다.

주교단은 이날 발표한 성명 ‘기후위기, 지금 당장 나서야 합니다’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정부와 담당자들에게 호소한다”며 “이미 전 세계 수많은 국가와 도시가 기후위기 비상 사태 선포에 참여한 만큼, 우리 정부도 기후위기의 진실을 인정하고 비상 사태를 선포하라”고 요구했다.

또 “실효성 있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기후 정의에 입각해 석탄 화력 발전소의 과감한 감축,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농ㆍ축산업의 변화를 위한 획기적인 정책을 수립, 시행하라”고 제언했다. “기후위기에 맞설 범국가 기구를 설치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올 들어 벌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의 배경이 개발 위주 성장 정책이라는 게 주교단의 판단이다. 주교단은 “기후변화로 빚어질 재난은 또 다른 바이러스들의 창궐을 가져올 것”이라며 “기후변화는 이미 생태계 곳곳에 심각한 재난의 표징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동안 우리 인류는 이 세상의 주인 행세를 하며 무책임하게 모든 피조물을 남용하고 혹사하고 약탈했고, 그 결과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 생태계는 이미 심각한 오염과 질병과 기후위기에 봉착해 울부짖고 있다”고 “무절제하게 개발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활 양식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주교주교회의 관계자는 “전 세계 천주교회가 16~24일 지낼 ‘찬미 받으소서’ 반포 5주년 기념 주간을 앞두고 천주교주교회의는 회칙 반포 이후 교회가 해 온 생태 영성 실천을 되돌아보며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6월 18일 생태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반포한 뒤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교황 회칙은 주교들에게 보내는 형식을 통해 전 세계 가톨릭 교회와 10억여 가톨릭 신자에게 전파되는 사목 교서다. 찬미 받으소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위기를 다룬 첫 회칙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이하 성명서 전문.

기후 위기, 지금 당장 나서야 합니다

“누이이며 어머니 같은 지구 생태계가 울부짖고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항)

우리는 올해 시작부터 여러 대륙으로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일찍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도 일 년 가운데 가장 거룩하고 중요한 부활절 전례 거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과 경로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우연한 출현이 아니라,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으로 아무런 제어 없이 질주해 온 개발 위주의 성장 정책이 빚어낸 부산물임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의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로 삼림 파괴와 동식물의 멸종이 인간 세계와 먼 거리에 있던 바이러스들을 숲 밖으로 불러냈고, 인간세계의 고속화된 교통과 유통망은 이들을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시켰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많은 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각국의 국경 폐쇄와 물류 차단으로 발생하는 경제 위기는 지금 전 세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불황을 예감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전의 개발과 성장 일변도의 경제 정책을 계속 이어간다면, 우리는 많은 과학자가 예측하고 경고하는 더 큰 재난 상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후 위기’입니다. 기후 변화로 빚어질 재난은 자연계 전체에 더욱 엄청난 혼돈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바이러스들의 창궐을 가져올 것입니다. 기후 변화는 이미 생태계 곳곳에 심각한 재난의 표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1.5°C 특별보고서(2018년)는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 아래로 막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재난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구 평균 기온은 이미 1℃ 상승하였고, 현재의 추세라면 2030년에는 상승 한계치에 도달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에 따른 대가는 혹독할 것입니다. 국제 연합(UN) 보고서는 1.5°C 상승만으로도 심각한 물 부족, 폭염, 경작지 감소, 식량 위기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가장 먼저 사회적 약자들이 당하고, 이어서 인류 전체가 파국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인류는 이 세상의 주인 행세를 하며 무책임하게 모든 피조물을 남용하고, 혹사하고 약탈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 생태계는 이미 심각한 오염과 질병과 기후 위기에 봉착하여 울부짖고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항 참조). 지구는 우리가 만들어 낸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피조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을 지키고 보호할 소임을 받은 관리인입니다. 우리도 지구 생태계 안에서 함께 공존하는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탐욕과 오만으로 하느님과 자연을 거슬러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속죄하는 생태적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절제하게 개발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리는 생활 양식을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이미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늦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해야 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하느님 창조 사업의 협력자로 부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시민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지구 생태계 위기에는 사회적 사랑으로 대처합시다. 검약과 희생을 통한 사랑의 실천으로 생활 양식의 전환에 적극적으로 동참합시다.

2. 선의의 모든 시민에게 호소합니다.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로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십시오.

3.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정부와 담당자들에게 호소합니다.

(1) 이미 전 세계 수많은 국가와 도시가 기후 위기 비상 사태 선포에 참여하였습니다. 우리 정부도 기후 위기의 진실을 인정하고 비상 사태를 선포하십시오.

(2) 실효성 있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기후 정의에 입각하여 석탄 화력 발전소의 과감한 감축,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농·축산업의 변화를 위한 획기적인 정책을 수립, 시행하십시오.

(3) 기후 위기에 맞설 범국가 기구를 설치하십시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과 이 사회의 선한 이웃들이 마치 ‘노아’처럼 ‘한 사람의 의인’이 되어 생명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받아들인다면(「찬미받으소서」, 71항 참조), 세계는 헛된 성장의 신화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세상으로 전환하고 지구촌의 파국을 비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0년 5월 8일

회칙 「찬미받으소서」 5주년을 맞으며

한국 천주교 주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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