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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하나씩 침범한다. 비밀리에 포교하는 사이비 종교,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특정 직군, 그리고 이번에는 성소수자들이다. 최근 언론의 무분별한 코로나19 보도 행태로 인해, 성소수자들이 대거 ‘아웃팅(성적 지향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공개되는 일)’당할 위험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5월 7일, 한국에서 나흘 만에 코로나19 지역감염자가 발생했다. 이게 문제가 된 건 단순히 사흘 간 계속된 ‘지역감염자 0명’의 기록이 깨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확진자의 동선에 클럽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컸다. 그것도 한 군데도 아니고, 하룻밤 새 주점과 클럽을 합쳐 다섯 군데를 여섯 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화가 난다. 무책임하다. 그가 클럽을 찾은 5월 2일은 아직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지도 않았을 때다. 클럽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폐쇄된 공간에 밀집하는 데다 접촉자를 특정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사실 한국엔 두 가지 팬데믹이 돌고 있던 건 아닐까? 하나는 코로나19고, 다른 하나는 클럽에 안 가면 죽는 병이라든가. 그래서 이런 시국에도 반드시 클럽에 가야만 했던 것이라든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 인파가 굳이 클럽에 몰렸다는 게 참 당황스럽다. 방역 일선이 밤새 속된 말로 ‘갈려 나가는’ 동안, 누군가는 밤새 클럽에서 놀고 있었다는 게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건 따로 있다. 몇몇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다. 확진자가 다녀간 클럽이 성소수자들이 이용하는 클럽이라는 이야기가 퍼지자, 한 언론은 바로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란 제목으로 이를 기사화했다. 이 기사는 확진자의 자택 위치, 나이대, 직종, 직장 위치 등 불필요하게 많은 개인정보를 담기까지 했다. 뒤이어 유력 일간지, 통신사, 지상파 방송들까지 그가 방문한 클럽이 게이클럽이라는 사실을 ‘굳이’ 강조해 가며 사건을 보도했다.

동선은 보호되어야 할 개인의 내밀한 정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동선 공개를 용인하고 있는 이유는, 이를 통한 방역과 생명권 보호라는 더 큰 가치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들은 사회의 공기를 자처하면서도 이런 사회적 합의의 본질을 저버리고 확진자의 개인정보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그 결과 확진자는 물론, 접촉자들까지 아웃팅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그럼 그게 최소한 방역에 도움이라도 되는가? 오히려 방해된다. 접촉자들이 아웃팅 범죄의 위협에 방역망 밖으로 숨어 들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방역 당국도 언론을 향해 ‘보도준칙을 지켜 달라’고 경고했다. 환자의 동선에 대한 정보를 굳이 불필요한 수준까지 까발려 얻는 거라곤, 그저 어떤 이들의 얄팍한 차별 의식과 언론사의 트래픽뿐이다. 방역 당국은 언론에 혐오 장사나 하라고 동선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도 사실은 조심스러웠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되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젠 모르는 척 묻는다 해서 묻힐 상황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이게 인권을 위해 동선을 공개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읽힐까도 우려된다. 그 또한 아니다. 지금은 생명권 그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고, 적절한 동선 공개는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이건 방역과 인권 사이의 미묘한 균형추 같은 고차원적 담론이 아니다. 그냥, 왜 쓸데없이 게이클럽에 그리 집착하느냐는 것이다. 방역에도 쓸모없는 인권 침해를 굳이 왜 하냐는 것이다. 그냥 클럽 이름을 쓰면 족하다. 그런다고 알 권리가 침해되는 것도 아니고 방역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성애자들이 이용하는 클럽이면 ‘이성애자 클럽’이라고 보도할 것도 아니잖은가. 이런 걸 TMI(Too Much Information)라고 한다. 말할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는 쓸데없는 정보라는 뜻이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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