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긴 했지만, 피아니스트로 성공하지 못하면 뭘 해야 할까 생각은 했었죠. 20살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스물여덟 정도까지 잘 안 되면 빨리 접고 다른 걸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7일 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미리 녹화된 온라인 공연을 선보이며 ‘피아니스트 외에 다른 일을 꿈꿔본 적이 있는지’ 묻는 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연주자로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의 진로를 고민하면서도 막상 “뭘 해야 할지 생각해보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공연은 독일 베를린 마이스터홀에서 무관중으로 열렸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너무 진짜 같아서 재밌게 봤어요”
공연 도중 팬들의 질문을 전달한 진행자와 이야기를 나눈 그는 코로나19로 연주 활동을 중단하고 외출을 자제하면서 지내는 일상도 소개했다. 조성진은 “연습하고 나서 쉬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등 평소와 큰 차이는 없지만 예전보다 드라마를 많이 보게 된다”고 운을 뗐다. 그는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를 많이 보는데 최근 한 달 동안 영국 드라마인 ‘블랙 미러’를 다 봤다”며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는 시즌1을 다 봤고 ‘브레이킹 배드’는 시즌 5개를 일주일 동안 다 봤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도 보냐는 질문에는 “최근 한달 안에 본 건 아닌데 ‘스카이캐슬’을 봤다”며 “너무 진짜 같아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대응 기금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열린 이날 온라인 콘서트에서 조성진은 약 20분간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D760’ 2악장과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렌토 아사이/그란디오소를 들려줬다.
그는 지난 3월 28일과 지난달 26일에도 온라인 공연을 연 바 있다. 이번 페이스북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동안 다양한 국가의 팬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응원의 글을 쏟아냈고 기부 행렬도 이어졌다.
조성진은 학교 음악시간에 음악교사가 어떤 걸 가르치길 바라냐는 질문에 “우리가 흔히 아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유명한 곡만 아니라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걸 알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인으로 살며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지 못한 점, 또래 친구가 별로 없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함께 연주하고 싶었던 연주자나 악단과 함께 연주하고 도이치 그라마폰에서 음반을 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도 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초등학교 2학년생에겐 “내 경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매일 두세 시간씩 연습했다”며 “인내심과 참을성이 중요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8일 앨범 ‘방랑자’ 발매…슈베르트 리스트 베르크 곡으로 구성
조성진은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네 번째 스튜디오 녹음 앨범 ‘방랑자’를 8일 내놓았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낭만주의 전기ㆍ중기ㆍ후기를 각각 대표하는 슈베르트, 리스트, 베르크의 음악을 선택했다. 조성진이 직접 세 작곡가와 작품을 선정해 구성했다.
앨범의 중심이 되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D760’은 방랑자 가곡의 선율을 차용해 탄생한, 다소 우울하지만 동시에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꼽힌다. 성악가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한 ‘방랑자 가곡’은 하드 커버 디럭스 버전에만 수록됐다.
조성진은 앨범 발표에 앞서 이 음반의 국내 배급을 맡은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방랑은 낭만주의 시대에 무척 중요한 단어였다”면서 슈베르트가 음악가이자 방랑자로서 여러 곳을 여행했던 사실에 대해 “나를 포함한 동시대 뮤지션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 담긴 리스트와 베르크의 음악은 환상이라는 단어로 묶인다. 조성진은 “나를 매혹시킨 것은 아주 적은 재료만 가지고도 이런 걸작품을 빚어내는 작곡가들의 솜씨”라며 그들의 상상력에 주목했다.
이번 앨범 수록곡들은 마치 모든 악장이 연결돼 있는 단악장처럼 들리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S.178은 30분이 넘어가는 긴 곡으로 연주자에게 지구력을 요구한다. 그는 “완벽하게 한 번에 치는 게 어려웠지만 흐름을 위해 한 번에 녹음했다”고 전했다.
한편 조성진은 7월 한국에서 공연을 열고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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