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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러시아에서 승전기념일이 더 특별한 까닭

입력
2020.05.10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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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9일 러시아 주코브스키에서 승전기념일을 맞아 열린 ‘불멸의 연대 행진’.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5월 9일 러시아 주코브스키에서 승전기념일을 맞아 열린 ‘불멸의 연대 행진’. ©게티이미지뱅크

5월 9일은 러시아의 승전기념일이었다. 여기서의 전쟁은 나치 독일군의 공격을 물리친 제2차 세계대전이다. 아시아 지역에 있는 우리나라는 일본이 항복했던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지만, 유럽에서는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 혹은 9일을 승전기념일로 축하한다. 날짜가 다른 건 독일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시점의 현지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즉 독일보다 시간이 빠른 러시아는 구소련국가들과 더불어 9일에 기념하고, 다른 서유럽 국가들은 8일에 기념한다.

러시아인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들은 왜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자랑스러워할까? 여기가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이해 부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몇 년 전 만난 한 러시아 영사는 한국 신문기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기를 잡은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였는데, 한국 기자들은 마치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온 듯이 기사를 쓴다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이 서구 중심의 대중매체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지만, 내심 그 영사의 불만에 공감했다.

러시아사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2차 세계대전 부분을 가르칠 때면, 유럽에서의 전쟁은 단연코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었다고 강조한다. 우리 이미지 속의 2차 세계대전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투입된 미군 병사들,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인 용감한 프랑스인들, 무차별 폭격에도 굴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 이끌어 간 영웅적인 처칠과 영국인들, 이런 것들이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실제처럼 처절하게 묘사한 ‘라이언 일병구하기’나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 연합군을 구출하기 위한 필사의 탈출 작전을 그린 ‘덩케르크’를 보면 유럽에서의 전쟁은 마치도 영국 미국 프랑스 대 독일로 치러진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론 거의 대부분의 전쟁 기간 동안 유럽의 주요 전투는 서유럽 쪽이 아니라 독일과 소련, 즉 독일의 동부전선에서 치러졌음에도 말이다.

이것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40년 독일군이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점령한 후 프랑스로 진격하여 파리를 점령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주 반에 불과했다. 반면 독일군이 방심하고 있던 소련을 선전포고 없이 공격해 들어온 1941년 6월 22일부터 소련군이 프루트강을 건너 루마니아로 진격해 나간 1944년 4월 8일까지 소련군과 시민들은 소련 땅에서 독일군 주력부대에 맞서 싸워야 했다. 독일군을 소련 땅에서 몰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3년에 달했던 것이다. 스탈린의 여러 차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2 전선, 즉 서부 전선 구축은 계속적으로 지연되었는데,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것은 1943년 9월, 노르망디에 상륙한 것은 1944년 6월이다. 이때는 이미 소련군이 승기를 잡고 독일군이 수세에 몰린 이후이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실은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투였던 것은 사망자 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의 총 사망자 수는 5,000만~7,000만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이 중 소련인 사망자 수가 2,500만~2,700만명으로 추산된다. 대략적으로 말해, 전체 사망자 수의 절반이 소련인이었던 것이다.

독일군의 포위하에 2년 반 동안 봉쇄되었던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만 해도 적게는 64만명, 많게는 15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 연료, 의료품의 공급이 끊긴 상태로 버텨야만 했으니 아사와 동사자가 속출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또 얼마나 격렬했던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소련군 사병의 평균 생존 시간은 24시간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스탈린그라드 시민들은 소개되지 않은 채 그 처참한 전쟁터 속에서 살았으니, 아이들은 얼어붙어 있는 시체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희생을 감수하고 획득한 승리인 것이다. 소련군 지휘관과 사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극심한 기아를 겪으면서도 버텨 준 레닌그라드 시민들, 독일군의 점령하에서 목숨 걸고 저항운동을 벌였던 게릴라 대원들, 여성임에도 전쟁터에 자원해서 간호병, 통신병, 심지어 전투원이 된 그녀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소련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오늘날 ‘대조국전쟁’에서의 승리를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자국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를 꼽는다. 이것이 소련이 붕괴됐음에도 불구하고 소련 시절을 싸잡아 폄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올해도 승전기념일에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거대한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을 것이다. 노병들은 각종 훈장들을 달고 전쟁의 기억을 추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몰두한다. 어쩌면 더 힘든 전쟁일지도 모른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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