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초래한 위기는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항상 선진국의 모범사례로 찾아다녔던 미국과 일본, 영국의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 정부가 올림픽을 염두에 둔 일본과 같은 태도를 취했거나, 코로나19가 별거 아니라고 무시했던 미국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닥쳐올 경제위기에도 우리나라가 지금까지처럼 잘 대처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당장은 신종감염병의 위협이지만, 다음 단계는 무너져 가는 민생과 경제이다. 재난지원금이나 한국판 뉴딜은 정부차원에서 위기를 해결해 가려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예상대로 한국판 뉴딜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린뉴딜이 포함되지 못했다거나 특정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는 비판이 그런 것들이다. 아직 한국판 뉴딜의 그림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므로 이런 비판은 앞으로 담아야 할 내용들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제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판 뉴딜을 단지 단기간에 막대한 공적 재원을 조달하여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저마다 자기 사업 계획을 제시하고 경쟁적으로 제안들을 하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의 우선순위가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디지털 뉴딜, 휴먼뉴딜, 그린뉴딜은 나름대로 그런 고심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정부가 직접 조달하고 만들 수 있는 공적자금과 공공일자리는 한계가 있다. 결국은 공적자금을 마중물로 하여, 기업을 포함한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하는가가 위기극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위기 시에는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정부가 구조개혁과 혁신의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칼자루를 달리 표현하면 정부의 규제라고 할 수 있다. 규제란 일정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사회구성원들의 행위에 개입하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상당 부분 규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규제의 대상은 기업일 수도 있고, 시민이나 특정 이해 당사자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어려워진 기업들에 공적자금도 지원하고, 기업 활동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1997년의 외환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 이번 코로나19 사태까지 전 지구적 위기는 어찌 보면 규제시스템의 붕괴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다국적기업과 국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최대한 자유를 보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초래하고 있는 경제 위기는 자연을 수탈하는 인간 활동을 규제하는 시스템이 붕괴한 것이 원인이다. 지구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무분별한 훼손이 초래한 위기이며, 인간과 기업의 활동이 지속가능한 범위에서 통제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뉴딜이란 위기 극복을 위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전환에 필요한 것은 재원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질서 즉, 새 규제체계이다.
규제가 국가지배를 강화하고 사회구성원의 활동을 제한하는 수단일 경우에 규제개혁은 규제완화나 철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규제는 다른 한편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보호막이기도 하다. 20세기 말까지는 규제개혁에서 기업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규제완화가 주요 화두였다. 21세기에 들어서 더 나은 규제(better regulation), 좋은 규제(good regulation), 똑똑한 규제(smart regulation)가 규제혁신의 핵심이다. 좋은 규제란 기업 활동만 아니라 국민들의 안전과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규제이다. 한국판 뉴딜의 성공여부는 정부가 어떤 경제 질서와 규제체계를 구축해 가는가에 달려 있다.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원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