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명절이나 사월초파일이면 늘 아내를 따라 인근 사찰에 간다. 나야 종교에 아예 무관심이고 아내도 딱히 신자라고 할 수 없기에 장소는 늘 바뀐다. 오늘도 양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연휴 시작에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가평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가평의 사찰은 주차장에 내려서도 가파른 비탈길을 1.5㎞가량 올라가야 했다. 아내야 고역이겠지만 난 이렇게 산책을 겸할 수 있는 사찰 여행이 더 좋다. 아니, 사실은 사찰보다 산책이나 여행, 잿밥에 더 관심이 크다. 햇살도 바람도 좋은 날, 철쭉, 병꽃나무, 귀룽나무, 매화말발도리가 활짝 꽃을 피우고, 여기저기 연보랏빛 각시붓꽃들도 소담스럽기 그지없다.
우리는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점심 공양’이 가능한지부터 물었다. 안내자는 코로나 19로 공양실을 폐쇄하고 대신 떡을 준비했다며 백설기와 바나나 몇 조각이 담긴 종이 접시를 내어준다. 절을 찾는 이유에 사찰에서 먹는 점심도 비중이 크기에 아내는 조금 아쉬웠을 것이다. “1000원짜리 지폐 있어요?” 아내가 물었다. 아내는 사찰을 찾을 때마다 대웅전, 삼성각 등 세 곳을 돌며 각각 삼 배를 하는데 그때마다 불전함에 1,000원씩을 넣는다. 나는 그동안 경내를 어슬렁거리며 이곳저곳 구경을 한다. 이즈음의 사찰이면 대체로 모란이나 작약 꽃이 활짝 개화를 하는데 여기는 모란도 겨우 몽우리를 내밀었을 뿐이다. 경기도 북부인데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탓이리라. 점심 공양이 없는 것보다 난 그쪽이 더 아쉽다.
종무소 벽, 현수막에 뭔가 적혔기에 무심코 읽어 보았다. “기와 한 장을 시주하신 공덕은 여러 생 동안 집 없는 업보를 면하게 하고……태어나는 세상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는 복을 누리게 합니다.” 사찰 구경이야 한두 번이 아니니 기와 시주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욕망을 부추길 필요는 없지 않나. 그래서인가, 시주한 기와마다 사업 성공, 업장 소멸, 합격 기원 등 세속의 욕망으로 가득하다. 누가 그랬더라?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을 부추겨 돈을 버는 사업 중에 교육과 종교만한 것이 없다고. 오늘은 여기도 고요한 산사라기보다는 시골장터 같은 기분이다. 이를테면 부처님오신날은 제일 큰 대목인 셈이다. 양초는 5,000원, 기와는 1만원, 연등은 10만원. 멥쌀 한 봉지에도 ‘공양미’라는 기복 딱지를 얹고 적잖은 이윤을 붙여 자판에 내어놓았다.
오늘 아내는 기와 한 장에 불전함 3,000원, 도합 1만3,000원어치의 복을 구입했다. 10만원 연등의 축복이 1년 만기라니 대충 한 달하고도 하루어치쯤 되는 모양이다. 우리 집이 없는 이유가 조상의 공덕이 부족해서인 걸까? 갖지도 못하는 기와를 얼마나 사들여야 여러 생 동안 집 없는 설움을 면하고 좋은 집에 태어나 호가호식할 수 있을까? 돌아가신 법정스님은 탐욕을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좇으랬다는데 정작 종교단체들은 돈을 받고 부와 성공의 약속을 면죄부처럼 팔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욕망과 근심을 덜어낼 곳이 해우소밖에 없다는 얘기도 농담만은 아닌 듯싶다.
우리는 사찰에서 내려와 산기슭 막국수집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아내한테 사정해 막걸리도 한 병 주문했다. “절에들 댕겨 오시나 봐요.” 주인장이 물수건을 내오며 아는 체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돼 죽겠어요. 절에 간 김에 이 놈 좀 어떻게 해 달라고 빌지 그러셨어요.” 그러고 보니 대목이어야 할 석탄절이건만 빈자리가 더 많았다. 정말 코로나한테서 우리를 구조해 달라고 빌기라도 할 걸 그랬나? 하지만 코로나야말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재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주머니, 종교의 목표는 미래와 내세래요. 지금의 문제는 관심도 없다던대요? 난 그 말을 목젖에서 꿀꺽 삼키고 벌컥벌컥 막걸리 한 사발로 쓸어내린다.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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