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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휠체어 다시 밀 수 있다면…” 칠순 딸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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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휠체어 다시 밀 수 있다면…” 칠순 딸의 사모곡

입력
2020.05.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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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효행자 표창 받는 최옥순씨 

어버이날인 8일 서울시에 주는 효행자 표창을 받는 최옥순씨가 7일 서울 서대문구 초원경로당을 찾았다. 코로나19로 문은 닫혔지만, 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13년 동안 휠체어로 어머니를 태우고 집처럼 드나든 곳이다.
어버이날인 8일 서울시에 주는 효행자 표창을 받는 최옥순씨가 7일 서울 서대문구 초원경로당을 찾았다. 코로나19로 문은 닫혔지만, 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13년 동안 휠체어로 어머니를 태우고 집처럼 드나든 곳이다.

노인은 13년 동안 ‘휠체어 운전사’로 살았다. 그가 모신 승객은 바로 어머니. 이순(耳順ㆍ60)이 넘어 손목이 시큰했던 딸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개천 옆 가파른 언덕을 백발의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운 채 1만여 번 오르내렸다. 척추 수술을 세 차례나 해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경로당에 모셔주는 경로였다.

홀로 사는 어머니가 잠시라도 집 밖 공기를 쐬길 바랐던 딸은 비가와도 우비를 입고 휠체어를 밀었다. 오가는 길은 고됐다. 10여 년 넘게 홀로 어머니를 모시면서 체력이 떨어져 얼굴엔 ‘땀띠’가 돋아 병원 신세를 졌다. 대상포진이었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2015년까지 최옥순(75)씨가 했던 일이다.

“힘들었지, 그래도 자식이니까. 나름 최선을 다해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크게 울지 않았어.” 7일 오후 만난 최씨는 옛 생각에 젖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버이날인 8일 서울시에 주는 효행자 표창을 받는 최옥순씨. 최씨 제공
어버이날인 8일 서울시에 주는 효행자 표창을 받는 최옥순씨. 최씨 제공

최씨는 어버이날인 8일 효행자로 서울시에서 주는 시민 표창을 받는다. 지역에서 묵묵히 효를 실천해 온 시민에 주는 상이다.

최씨는 동네에서 신사임당의 어진 인품에 빗대 ‘최사임당’으로 불린다. 그는 모친이 떠난 뒤에도 경로당을 찾아 다른 어르신을 돌본다. 시장을 봐 점심을 대접하는 게 그의 일이다. 1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르신 집을 찾아 따로 밥도 해주고 있다. 최씨는 “10년 동안 경로당에서 밥을 해주시던 분이었고 우리 어머니와도 친하셨던 분”이라며 “다 내 어머니 같은 분들”이라고 말했다.

‘해방둥이’인 최씨에게 어려운 사람과의 동행은 ‘삶’이었다. 그의 고향은 경북 경산시 남천면. 최씨의 어머니는 먼 타지에서 머리에 봇짐을 이고 온 장사꾼을 보면 늘 집에 재웠다. 최씨는 “삼복더위엔 어머니가 큰 대접에 냉수를 떠 간장 한 숟갈을 풀어 봇짐장수들에 주곤 했다”며 “어려선 몰랐는데 탈수할까 봐 간장물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히 읽은 ‘명심보감’은 그의 삶을 흔들었다. 최씨는 “우리 땐 아들들 학교 보내느라 딸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며 “야학에서 ‘명심보감’을 보고 베푸는 삶에 대해 크게 깨우치게 됐다”고 했다.

8남매와 좁디좁은 방에서 어렵게 살았지만 효와 나눔의 끈을 놓지 않은 최씨의 신조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삶,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좋은 일을 하자”라고 한다. 그런 그는 주변에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보면 주민센터 등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먼저 요청한다. “내가 없으니까, 도움을 줄 수 있는 곳 연결이라도 해줘야죠”. 어머니와 같은 경로당을 다닌 어르신이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주민센터에서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은 것도 최씨였다.

인터뷰를 마친 뒤 최씨는 13년간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간 경로당을 찾았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그는 “노래 부르기 좋아했던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는 어떤 어머니로 남고 싶을까.

“물려준 것 하나 없어 자식들에 늘 미안했어요. 남편이 출판 일을 해 경제적으로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큰 아들이 언젠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지육신 멀쩡하게 낳아 준 것만으로 고맙다’고. 내가 다 고맙더라고요.”

글ㆍ사진=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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