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은 물론 대기업까지 지난달에 ‘은행 빚’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월부터 본격화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가 장기화되자 대출을 내서라도 ‘코로나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앞다퉈 은행으로 달려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해지고 있지만 이 같은 대출 수요는 최소 2분기까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은행)의 4월 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463조9,291억원으로 전달(455조4,912억원)보다 8조4,379억원 늘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찾아볼 수 있는 2015년 9월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이는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은행 빚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특히 지난달 1일부터 정부 주도로 시중은행이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초저금리 특례대출에 나서면서 대출 증가가 더욱 가팔라졌다. 은행들은 시중 금리 차이를 정부가 80% 지원하는 이차보전 대출을 통해 3,000만원까지 연 1.5%로 대출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개인사업자의 대출이 한달 새 5조1,219억원 늘었다. 지난달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의 61%가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분인 셈이다. ‘역대급 증가’로 평가받던 3월 증가폭(2조7,755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코로나19로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지난 2월부터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는데, 이 여파가 두 달이 넘도록 진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코로나19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대기업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렸다.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은 지난달 5조8,052억원 늘어난 88조5,074억원을 기록했다. 전달 증가액(약 8조원)에 비해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72조원)과 비교하면 넉 달간 16조원 넘게 늘어났다.
대기업은 회사채 등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한다. 이 때문에 통상 시중은행의 대기업의 대출 잔액은 70조원대에 머무르고, 대출 증감액수도 1~2억원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코로나19 영향으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자금줄이 막히자 대기업까지 은행을 찾아 ‘실탄’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합친 전체 기업대출은 지난달 말 14조2,432억원 늘어 전달(13조4,568억원)에 이어 사상 최대 증가액을 경신했다.
최근 국내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당분간 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감염증 확산세가 여전한데다 유가 폭락에 따른 경기 침체가 2분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대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유동성 확보 움직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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