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낳은 ‘어버이날 이산가족’
요양병원 면회 금지, 귀향도 “자식 걱정에 만류”
애끓는 마음에 정성 담은 편지 전하기도
“어머니 손을 잡아본 지가 언제인지…곧 있으면 벌써 100일이에요.”
경남 함안군에 사는 박모(58)씨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부인, 딸과 함께 어머니 김모(80)씨를 모신 창원의 한 요양원을 찾았다. 평소라면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싸 들고 어머니를 맞았겠지만, 이날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지난 2월부터 외부인의 직접 면회가 아예 금지되면서다. 치매를 앓고 있는 김씨는 아들 내외를 보자마자 “방으로 들어오라”며 떼를 썼다. 박씨는 그런 어머니 모습을 보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외부면회가 금지된 지난 3개월 동안 어머니 혼자 외로워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가 훈훈해야 할 어버이날 풍경마저 가슴 시리게 바꿔 놓았다. 보건당국은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요양시설의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등은 면역력이 약해 신종 코로나 감염시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방문 자제를 거듭 요청했다. 요양시설의 대면 면회가 전면 금지된 가운데, 수개월째 ‘이산가족’이 된 자녀와 부모들은 애끓는 마음만 삭이고 있다.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신 자녀들은 죄송스런 마음뿐이다. 가뜩이나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올해는 어버이날 방문마저도 무산됐기 때문이다. 치매로 5년째 투병 중인 아버지를 둔 김호진(56)씨는 “간병인을 통해 영상 통화로나마 아버지 얼굴을 본다”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생신이나 어버이날 같이 특별한 날에만 찾아갔었는데 올해는 그것조차 여의치 않아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병원들도 비대면 면회 방식을 도입해 부모, 자식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애쓰고 있다. 대전보훈요양원은 지난 3월부터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 전화로 면회를 진행하는 비접촉 안심면회 ‘만남의 창’을 운영하고 있다. 요양원 측은 “코로나 예방을 위해 1월부터 대면 면회를 화상 면회로 대체했지만 면회 제한 기간이 길어지면서 어르신들의 우울감이 우려됐다”고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애끓는 마음을 눌러 담아 생전 쓰지 않던 편지를 쓰는 이들도 늘었다. 경기 하남의 미사강변요양병원은 어버이날을 맞아 자녀들의 편지를 카네이션과 함께 대신 전달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병원에 입원한 노인이 100여명인데 7일까지 도착한 편지만 30여통. 병원 관계자는 “환자 가족들께서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주신다”고 전했다.
고향의 부모들과 떨어져 사는 자녀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종료되면서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을 찾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부모들은 혹시나 자녀가 신종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귀성을 만류하기 때문이다. 대구 수성구가 고향인 직장인 최현민(30)씨는 “연휴기간 중 집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추석에나 오라는 아버지 호통에 계획을 접었다”면서 “평소 안부 전화도 잘 안 하는 불효자식이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오랫동안 부모님 얼굴을 못 봬 가슴에 찡한 게 있다”고 고백했다.
노령의 부모들은 이웃들과의 교류도 줄어 쓸쓸함은 크지만, 자식 걱정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전남 장흥군 대덕읍에 사는 신모(90)씨는 “4월이면 제사 때문에 자식들 내외가 서울, 광주에서 내려오곤 했는데 올해는 설 연휴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다”며 “수십년간 마을회관 노인정에서 다 같이 수다 떠는 게 삶의 낙이었는데 폐쇄된 지 2달이 넘어 외롭고 쓸쓸하지만 별 수 있겠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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