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달라졌다. 적극적이고 자신만만하던 ‘유쾌한 정숙씨’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을 최근 공식 석상에서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3일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 명명식이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렸다. 이날 문 대통령과 함께 행사장에 도착한 김 여사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팔짱을 끼었다. 그러나 행사장 입구에 도착했을 땐 대기 중이던 언론의 카메라를 의식한 듯 어느새 팔짱을 풀고 문 대통령 보다 반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후 행사를 마칠 때까지 익숙하던 ‘유쾌한 정숙씨’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청와대 직제상 ‘영부인’이라는 공식 직함은 없다. 따라서 국정 운영과 관련한 어떠한 권한도 없지만 영부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 때로는 영부인에 대한 이미지가 대통령 지지율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영부인의 이미지 변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과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 등을 고려한 또 다른 ‘내조’로 읽힌다.
◇쾌활한 성격으로 적극적인 내조
김 여사는 문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밝고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취임 엿새째인 2017년 5월 15일 청와대가 제공한 사진 속에서 김 여사는 화사한 분홍색 옷차림으로 문 대통령의 팔짱을 끼고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했다. 최고 권력자의 권위보다 평범한 가정집의 출근길 풍경이 물씬 풍기는 이 사진에서 주인공은 단연 김 여사였다.
김 여사는 외교와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영부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 왔다. 2017년 7월 충북 청주시 수해 복구 현장을 찾아 직접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며 복구 작업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주민들을 만나 손을 잡고 위로를 건네는 수준을 넘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봉사활동에 나선 영부인의 모습에 국민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김 여사의 쾌활한 성격이 가장 돋보인 것은 외교 내조였다. G20 등 국제회의에서 적극적인 성격의 김 여사는 각국 정상 부인들 사이에서 항상 눈에 띄었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와 자매 같은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며 회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2018년 11월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공식 초청으로 인도를 단독 방문해 한ㆍ인도 관계의 발전 방안 등을 논의하는 등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오바한다’ 비판도
그러나 김 여사의 거침없는 성격이 비판을 부른 경우도 있었다. 2018년 11월 28일 문 대통령 내외가 체코 프라하의 비투스 성당을 방문했는데, 가톨릭 신자인 김 여사가 성당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다 대통령 일행과 떨어지고 말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김 여사가 “우리 남편 어디 있나요?”라며 급하게 달려가 문 대통령의 팔짱을 끼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영부인이 의전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일었다. 그에 반해 사랑스러운 모습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2019년 6월 28일 일본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선 김 여사가 정상 배우자들과 함께 교토 도후쿠지를 둘러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의 팔짱을 끼다가 제지를 당했다는 후문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 해 9월 5일에는 라오스 국빈 방문 중 와타이 국제공항에서 열린 환송식에서 김 여사가 대통령보다 서너 걸음 앞서 걸으며 환송객들에 손을 흔드는 사진이 보도돼 논란이 됐다.
지난 2월 20일에는 아카데미상 4관왕을 달성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출연진을 초청해 환담을 하면서 크게 웃는 사진이 공개돼 여론이 악화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첫 사망자가 나오고 대구를 중심으로 대량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었던 만큼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인 것이다.
김 여사의 이미지 변신에 이 같은 비판이 결정적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71%를 기록하는 등 고공행진 중이지만 당시만 해도 지지율은 40%대에 머물고 있었다. 영부인으로서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무겁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범적인 코로나19 대응에 이은 총선 승리, 지지율 상승 등 취임 3주년을 맞는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입은 국민의 상처와 경제적 타격이 엄중한 만큼 당분간 ‘유쾌한 정숙씨’는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 전속 사진사는 “평상시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유쾌한 정숙씨’”라고 전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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