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론 주먹만하고, 때론 사람 얼굴만한 크기의 꽃들이 한 두 개도 아닌 수십 개씩이나 캔버스 전체를 가득 채웠다. 색은 또 어떤가. 그림 앞에 서면 때론 폭력적이란 느낌이 들 만큼 강렬하다. 전시장 한 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아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그 크기만 해도 가로 6m, 세로 10m에 이른다. 이 아찔함을 어이 할까 싶은데, 작품명도 하필이면 ‘대혼란(Pandemonium)’이다. 낙원에서 쫓겨난 악마들의 유희 공간. 엄청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말하는 듯 하다.
‘대혼란’이 수직의 이미지라면, 부산 작업실에서 그렸다는 가로 8m에 이르는 또 다른 대작 ‘바다(Ocean)’는 ‘수평선’ 그 자체가 눈 앞에 육박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부산시립미술관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Ⅲ-김종학’전에 들어서면 ‘과연 김종학’이라 무릎을 치게 된다. 대작, 다작 작가라 불리는 김 화백의 명성에 걸맞게 에너지가 넘쳐나는 큰 작품들이 미술관 전관을 가득 채워서다.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나 여전히 붓을 거칠게 휘두르고 싶다’는, 여든 셋 김 화백의 웅변 같다.

널리 알려졌듯 김 화백의 화풍은 설악산 칩거 시절에 탄생했다. 1979년 홀로 설악산으로 들어가 소박한 꽃, 야생화, 들풀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을 캔버스에 담았다. ‘남자가 무슨 꽃 그림이냐’는 눈총도 쏟아졌다. 꽃 그림, 예쁜 그림을 금기시하는 현대미술 흐름과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자연이 너무 좋았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엮은 책 ‘김종학의 편지’를 보면, 김 화백은 딸에게 “100장의 좋은 그림만 남기고 죽자”는 내용을 써보내기도 했다. 김 화백은 그 모든 수근거림 속에서도 작업을 이어갔고, 10여년쯤 지나자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별도의 색을 만들어내기 위해 색을 섞지 않는, 원색 그대로의 아찔하고도 화려한 꽃들이 되레 인기를 끌었다.

시립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녹슬지 않는 김 화백의 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이전의 김 화백도 함께 보여준다. 원색의 화려한 꽃을 선보여 ‘꽃의 화가’ ‘설악의 화가’란 별명이 붙었지만, 사실 김 화백은 젊은 시절 실험적 작가였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에 잠시 머물며 판화로 갖가지 실험을 했고, 전위적인 작품이나 설치미술에도 발을 담갔다. 그래서 1960~70년대 김 화백의 작품에는 의외의 작품들이 적지 않다.
미술관은 이 노 대가의 작품을 주제에 따라 7개 방에 나눠 배치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 예약을 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전시는 6월 21일까지.
부산=임수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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