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세와 다른 의견 내던 초선답지 않은 초선
낙선에 ‘제2 김해영’ 아쉬움 이어져.. “젊은 의원들 미래지향적 국회 만들어주길”
낙선을 하고도 이렇게 관심을 많이 받는 국회의원이 있을까요.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내 유일한 30대 지역구 당선자이자 보수의 텃밭인 부산에서 장관 출신의 재선 의원을 꺾은 이변의 ‘흙수저 변호사’. 김해영 의원은 국회 개원 초기 반짝했다 잊혀진 여타 스타 초선들 사이에서 ‘초선답지 않은 초선’으로 꾸준한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용기를 내서 ‘아니오’라 외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3월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논의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명분이 없다”며 홀로 반대 의견을 냈던 것도 그였죠. 21대 총선에서 부산 연제에서 재선에 도전해 석패했음에도 그의 소신 발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은 국민 전체의 대표로, 진영논리보다는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의정활동을 해주시길 부탁한다.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침묵하는 게 아니라, 권력 가진 자에게 더 강하게 하고 약자에게는 더 낮은 자세로 섬기는 국회가 되어달라.” (4월20일 최고위원회의)
그의 낙선에 ‘제2의 김해영’이 21대 국회에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집니다. 일부 민주당 지지층의 맹비난에도 대세와 다른 의견을 망설임 없이 밝히던 김 의원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일 겁니다.
막 정계에 발을 들인 ‘정치 신인’ 김 의원은 어떻게 쓴 소리의 상징이 됐을까요. 낙선에도 불구하고 “국민들께서 잠시 맡겨준 역할을 나름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낸 4년의 의정 활동에 후회는 없다”고 당찬 소회를 전하는 그를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습니다.
◇ “소신 발언, 나 역시 피하고 싶었지만…”
김 의원이 당내 ‘소신파’ 이미지를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는 ‘조국 사태’가 있습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김 의원은 여당 지도부로서는 처음으로 “자녀의 입시 관련 부분은 적법ㆍ불법을 떠나 많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죠.
-김해영은 왜 당내 ‘쓴소리’의 상징이 됐나요.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양심에 따라 내린 판단이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력과 소득으로 대물림 되는 구조는 기성 세대에서 반드시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불평등이나 공정에 관한 부분은 주류와 다른 의견이라도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밝혀야 했죠.”
-초선으로서 남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선수(초선)나 지역(부산)의 보수 성향을 떠나서 조직의 일원으로서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부담스럽고 가능하면 안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당의 가장 젊은 지역구 의원으로서 정무적 판단보다는 원칙에 따라 의견을 많이 내도록 노력했어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 개개인이 헌법기관이잖아요. 경우에 따라선 99명이 ‘예’라고 하더라도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모두가 소신 발언을 반기진 않았잖아요. 결국 낙선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지자들 중에서는 서운한 마음을 표현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어요. 충분히 이해되고 귀담아 들어야 하는 부분이죠. 그러나 정치적으로 예민한 현안에서 권리당원의 의견이 100% 일치할 수 없어요. 20~30%는 주류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거죠. 건강한 정당이라면 이들의 목소리를 내줄 당 소속 의원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소신 발언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낙선은) 전적으로 제가 부족했던 탓이죠.”
◇“부산, 20대보다 의석은 반토막…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줘”
김 의원이 금배지를 달았던 20대 총선 당시 부산은 뒤집어졌습니다. 전체 18석 가운데 무려 5석을 야당이 차지하며 민주당 ‘갈매기 5형제(김해영ㆍ김영춘ㆍ박재호ㆍ최인호ㆍ전재수)’를 탄생시켰죠. 이어 2018년 재보궐 선거에서 해운대을에서 윤준호 후보가 승리해 의석을 6석까지 늘렸는데요. 그러나 민주당이 전국에서 180석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며 거대여당이 된 이번 4ㆍ15 총선에서 부산 의석 수는 절반(3석)으로 줄었습니다.
-본인을 포함한 민주당의 영남권 패배를 어떻게 보는지요.
“후보인 제가 부족했어요. 이번에 부산에서 3석을 얻은 민주당 당선인들은 막판에 (영남에서) 미래통합당 바람이 강하게 불었는데도 버텨냈죠. 지역의 바닥민심을 오랫동안 다져오신 분들인데, 저는 이런 부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이번 선거가 지역구도가 강화될 수 있는 조짐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당 후보들은 대부분 40% 이상을 득표했기 때문에 동시에 가능성도 보여준 선거인 셈이라고 봐요.”
-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민주당이 재보궐 선거서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요.
“(오 전 시장의 성추행은) 우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당의 일원으로서 피해자와 부산 시민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헌(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한 경우 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을 따라야겠지만, 집권 여당이 ‘제2의 도시’인 부산에서 시장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에요. 하지만 그런 논의보다도 피해자의 피해 회복, 부산시민들에 대한 사죄와 재발 방지 및 시정 공백에 대한 대책 등을 세우는 것이 먼저일 겁니다.”
-영남권 패배에도 민주당은 180석을 확보하며 대승을 거뒀는데요.
“국민들께서 압도적 지지로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신 거죠. 이 의미는 집권여당으로서 어떻게든 입법 성과를 내달라, 선거 결과에 책임을 져달라는 것 아닐까요. 민주당으로서는 무겁고도 무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2의 김해영? 전용기ㆍ장경태 당선인 눈 여겨 봅니다”
국회의원 배지를 뗀다고 마냥 쉴 수는 없는데요. 김 의원은 부산지역에서 변호사 전공을 살려 공익 활동을 하면서 국회와 한발 떨어져 사회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고민하고 성찰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 일요일 밤마다 서울로 떠나는 그를 배웅하며 대성통곡을 하던 아이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는데요. 4년 전 두 아이의 아빠였던 김 의원은 어느새 세 아이의 아빠가 됐습니다.
-21대 국회에 남기고 싶은 당부의 말은.
“정치권에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계속 잘못 끼운 채로 일이 진행된다’는 말이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고 실수를 하죠. 본인이 이전에 했던 말이나 주장에 대해 이후에라도 잘못된 부분을 알았다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바로잡는 것이 공직자로서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부분은 아쉽습니다.”
-다음 국회에서 소신 행보로 주목 받을 ‘제2의 김해영’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번 총선에서는 2030의원들이 이전에 비해 많이 탄생했잖아요. 당에서 성장한 정치인인 전용기(비례대표)ㆍ장경태(서울 동대문을) 당선자 등을 눈 여겨 보고 있어요. 국회에서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부분을 막상 들여다보면 국민의 삶과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요. 젊은 의원들이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국회를 만드는데 앞장서 주셨으면 합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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