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팔봉비평문학상] 심사평
구모룡 씨의 ‘폐허의 푸른 빛’, 송승환 씨의 ‘전체의 바깥’, 이재복 씨의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저자 이름의 가나다 순)가 최종적으로 논의되었다. 세 권의 비평집은 21세기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섬세한 읽기에 근거하면서 지역문학, 바깥의 사유, 몸의 정치성이라는 문제의식을 치열하게 성찰해 온 비평적 기록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폐허의 푸른 빛’은 지역문학에 대한 비평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온 비평가의 내공이 한눈에 들어오는 비평집이다. 지역문인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고 지역문학을 통해 문학의 보편성을 사고하고자 하는 비평적 노력은 그 자체로 소중한 의지의 실행이다. 지역문학이 한국문학의 타자화된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새로운 관점이자 가능성이라는 비평적 입장에는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체의 바깥’에서 비평가는 21세기 한국문학이 포착한 타자들의 자리(국가 폭력, 이방인 차별, 재난과 재앙 등)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바깥을 환기하고,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겹쳐 읽음으로써 한국문학의 바깥을 소환한다. 한국문학 비평을 위한 매우 의미있는 비평전략이라는 점에서는 전반적인 공감을 얻었지만,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겹쳐 읽는 과정에서 모종의 과도함이 산견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는 생명정치와 벌거벗은 몸이라는 문제의식에 근거해서 한국문학을 읽어가고자 한 비평집이다. 벌거벗은 몸을 둘러싸고 있는 생명정치와 대면하고 그와 동시에 벌거벗은 몸에 잠재된 자유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매우 중요한 비평적 과제이다. 다만 동시대의 문학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이 상대적으로 소략해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세심한 논의를 거쳐 구모룡 씨의 ‘폐허의 푸른 빛’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등단 이후 40년 가까이 부산에 근거를 두고 지역문학 비평을 수행해 온 그 동안의 업적뿐만 아니라, 로컬이라는 거처를 통해 어떻게 문학을 새롭게 발명할 수 있는지를 숙고하는 비평적 태도에, 한동안 심사위원들의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었다. 지역문학의 관점에서 한국문학을 새롭게 상상하고 발명할 수 있는 비평적 논의 가능성이, 저 멀리 폐허의 푸른 빛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수상자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심사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모든 비평집들이 한국문학을 위한 소중한 이정표였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김동식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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