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묻는다. ‘왜 가전제품은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키지 못했는가.’ 이 질문은 책의 부제가 됐다. 그러나 제목(‘세탁기의 배신’)은 정답이 아니다. 세탁기는 억울하다. 가사노동의 생산성이 좋아진 건 분명 가전제품 덕이다.
문제는 인식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거 아냐?” 정작 가전제품이 해방시킨 건 남편과 아이들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농업사회에서는 ‘가사노동’이라는 단어가 의미가 없었다. 누구나 집 안팎에서 ‘가사’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남편과 아이들도 참여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넘어오며 ‘가사노동’이라는 말도 생겼다. 여성이나 아내만 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기계화와 상업화를 통해 남편과 아이들이 주부를 도와주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곤경은 독박뿐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일이 늘었다.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면 힘 안 들이고 청소할 수 있는데 왜 먼지를 그냥 내버려둔단 말인가?” 책은 “전기세탁기 도입 뒤 빨래를 더 많이 한다거나, 진공청소기 덕에 더 자주 청소를 하거나, 전기/가스레인지의 사용으로 요리의 가짓수를 늘리는 등 분명 노동 절약이 목표였을 가전제품이 오히려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증가시켰다”는 미국 시카고대 가정경제학자 헤이즐 커크의 지적을 인용한다.
주부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보상이 없지만 더 고된 노동이 가사노동이다. “금전적 보상이 없는 노동이기 때문에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그림자노동’”인데도 “자발적이지만 철저하게 고립된 노동”이고 “그저 일방적 희생 아래 가족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보상조차 바라지 않고 매일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몹쓸 형태의 노동”이다. 여기에 여성만이, 특히 주부만이 참여해야 한다는 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낳은 비극이라는 게 저자의 비판이다.
이렇게 희생당하면서도 20세기 초반 주부들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남편이 다림질하지 않은 옷을 입고 출근해도, 아이가 등교 전 아침을 충분히 못 먹어도 어머니가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청결의 미덕과 위생 숭배가 당연시됐던 1920, 30년대에 이런 감정을 부추긴 건 가전제품 광고들이었다.
책은 옛날 옛적 미국과 소련 지도자가 세탁기 앞에서 벌인 허망한 ‘부엌 논쟁’을 소개하기도 한다. 소련과 맺은 문화협정 덕에 1959년 모스크바에서 연 미국전시관에서 당시 미 부통령 닉슨과 소련 당서기장 흐루쇼프가 만났다. 닉슨이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주부들의 생활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 겁니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지려면 부엌이 사라져야 마땅하다는 게 소련의 판단이었지만 그들은 부엌을 대체할 간이식당을 충분히 공급할 능력이 없었다.
세탁기의 배신
김덕호 지음
뿌리와이파리 발행ㆍ376쪽ㆍ1만8,000원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인 저자는 과학기술사 시각에서 일상사를 다룬다. 1965년 이후 미국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이 감소한 건 가전제품 덕이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 아래 남편들의 가사노동 참여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은 싱겁지만, 소외된 여성 노동사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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