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힘든데 오너 사과까지…” 볼멘소리도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사과 드립니다.”
6일 오후 3시,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마련된 기자간담회장에 입장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준비된 대국민 사과문을 읽는 10분 동안 세 차례 단상 앞으로 나와 깊이 머리를 숙였다. 검정색 정장에 남색 줄무늬 넥타이를 맨 이 부회장은 시종일관 표정이 굳어 있었지만, 담담한 어조로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총수로서 공식석상에서 허리를 숙인 건 처음이다.
이날 이 부회장의 사과문에는 ‘사과’라는 단어가 두 번 들어갔고, ‘반성’ ‘잘못’ ‘부족함’ 등의 표현도 사용됐다. 먼저 이 부회장은 삼성에 대한 국민의 비판 여론과 관련해 “모든 것은 제 잘못이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은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머리 숙여 사과한 뒤, 질문을 받지 않고 그대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두고 사내에서는 볼멘 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의혹과 노조 문제 등에 대한 반성을 담은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을 당시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경영 환경도 힘든 상황에서 기업 오너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흘러나온 바 있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폭탄이 떨어져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게 현실이다”며 “미래를 준비하기에도 부족한데 과거 일까지 오너가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하냐”라면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확실성 제거와 함께 그룹 경영을 안정시키고 총수로서 자리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포석이란 진단도 나온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돌려보낸 파기환송심이 진행되고 있는 데다, 올해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위기까지 덮치면서 그룹내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상태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오너의 비전과 결단’이란 카드가 필요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부회장의 공개 사과’란 성과를 거둔 준법감시위는 이후로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 준법감시위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며 “그 활동이 중단 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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