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권 대물림 않겠다” 재계 충격… 평소 소신도 작용
“600조 자산 편법 없이 상속 힘들어, 승계 불가 판단” 해석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기자회견에서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전격 선언하자, 삼성그룹은 물론이고 재계 전반이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당장 발언 배경을 두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호하는 이 부회장의 소신이 반영됐다'에서부터 '그룹 경영의 최대 리스크인 승계 문제를 원천 해소했다' 등으로 해석이 분분하다. 삼성 안팎에선 이 부회장이 그룹 총수로서 선대와 차별되는 리더십 원칙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3대에 걸쳐 80여 년을 이어온 삼성그룹의 '오너 경영' 체제가 거대한 전환을 맞을지 주시하고 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경영권 상속 종료' 발언이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권고를 받아들여 그간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불법 논란을 사과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이날 회견을 앞두고 삼성 안팎에선 이 부회장 자신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현재 재판을 받거나 수사선상에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포괄적인 사과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이 부회장은 과거 유죄 판결을 받은 삼성SDS 건은 물론이고 형사재판 무죄 판결을 받은 삼성에버랜드 건과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의 파기환송심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법적 단죄까지 갈 것도 없이 불법 의혹이 일어난 것만으로도 사과 대상이란 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향후엔 경영권 승계 자체가 없을 것이란 약속으로 논란의 소지를 원천 차단했다.
한편에선 총자산 600조원, 63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기업 삼성을 창업주 일가가 편법 없이 물려받기는 어려운 게 아니겠냐는 현실론도 작용했을 것이란 시각도 제기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 부회장조차 아직 승계 작업이 끝나지 않았고, 천문학적인 세금을 납부해야 겨우 경영권 행사가 가능한 수준의 지분을 확보할 것이다"며 "파격적인 세제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 한 더 이상 경영권 승계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언을 이 회장의 경영 청사진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 회장은 이날 "성별, 학벌,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제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전자를 지목하면서 "기업 규모로 보나, 정보기술(IT)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보다 고도화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중요한 위치'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이 부회장이 앞서 2016년 국회 청문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점이나, 이번 발언이 내부의 강한 반대와 우려를 뚫고 이뤄졌다는 내부 전언으로 미뤄보면 '소유-경영 분리'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가 이 부회장의 굳은 소신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발언에 대해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회사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배운 점이라고 언급했다. 이 시기 자신에 대해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할아버지인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이어받은 '오너 일가'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이 부회장의 처신이 역설적으로 그에게 삼성 지배구조를 개편할 주도권을 부여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 속에 재계는 물론 경영학자들까지 '삼성의 성공 방정식'으로 일컫던 경영 시스템과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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