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종료 폐기 우려…법사위 체계ㆍ자구심사권 수정 공방 불가피
20대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도 법제사법위원회에 막혀 계류 중인 법안이 55건에 달하는 것으로 6일 집계됐다. 여야가 상임위 단계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법안 처리에 합의했지만 이른바 ‘체계ㆍ자구(字句) 심사’ 권한을 가진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해 20대 국회 만료(29일)와 함께 폐기될 운명에 처한 주요 법안이 상당수라는 얘기다.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고 있는 법사위 권한 재정비를 두고 21대 국회 초반 여야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는 해당 법안이 헌법 등 다른 법 체계와 충돌하지 않는지, 자구가 적절한지 등을 살펴보는 국회법 상 절차다. 국회에 법조인이 부족했던 2대 국회 때인 1951년 국회법에 도입됐다. 법조인들이 주로 모여 있는 법사위에서 본회의 부의 전 ‘더 완벽한 법안’을 만들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6월 발의한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특별법’ 개정안이 대표적 피해 법안이다. 이는 세월호 피해자의 범위를 민간 잠수사, 자원봉사자 등으로 확대하고 각종 치료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해 2018년 3월 법사위에 상정됐다. 하지만 이후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당시 법사위에서 일부 야당 의원이 “(피해 범위를) 잠수사까지 확대하는 게 적절한가”라고 지적했고, 논의는 중단됐다. 박주민 의원실 측은 “법사위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은 이미 상임위에서 여야가 조율을 끝낸 것인데도 ‘세월호법은 그냥 반대’ 입장이니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목사 등 종교인들의 퇴직금 과세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도 법사위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3월 법사위에 상정된 후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당시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한 사실이 알려지고 ‘종교인 특혜’ 등 시민단체의 반발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법사위가 논의를 멈춰 세운 것이다.
체계ㆍ자구 심사와 별개로 재정 당국의 반대로 법사위 문턱에서 막힌 법안도 적지 않다. 외국인도 혼인 여부와 관계 없이 대한민국 국적 아동을 양육 시 한부모가족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은 지난해 6월부터 법사위에 묶여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상임위에선 여성가족부가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법사위에서 기획재정부가 추가 예산 등을 이유로 반대하며 중단됐다”고 했다. 대형 화재에 취약한 전통시장이 화재보험의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또한 기재부가 재정 투입에 난색을 표하며 2017년 8월부터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가 시작되면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권 폐지를 추진할 방침이다. 법사위가 체계ㆍ자구 심사권을 들고 ‘옥상옥(屋上屋)’으로 자리매김하는 폐단을 뿌리뽑겠다는 취지다. 민주당 관계자는 “법사위 대신 국회사무처 법제실 등에 별도의 기구를 두고 체계ㆍ자구 심사를 맡기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을 제외하면 특정 상임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법안의 체계와 자구를 심의하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체계ㆍ자구 심사 권한이 폐지되면 '공룡 여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진다며 반대 입장이다. 법사위 전선에서 21대 국회 초반 여야 힘겨루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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