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올해 2월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하면서, 영화에 등장한 다양한 내용들이 이슈가 됐다. 부유층을 상징하는 등장인물 동익(이선균)과 연교(조여정)의 고급 단독 주택이 대표적이다.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거실에 설치된 대형 창이다. 정원으로 이어지는 거실의 통창은 탁 트인 푸른 전망을 선사하며, ‘노상방뇨 뷰’를 감내해야 하는 기택(송강호)네 반지하 집의 창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저런 집에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고급 저택. 하지만 통창을 설치한 집에서 살아본 사람, 통창이 설치된 사무실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여름엔 냉방을 해도 복사열 때문에 실내가 온실처럼 뜨겁고, 겨울엔 난방을 해도 실내의 열이 줄줄 새어나가 발 밑에 전기 히터를 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겉보기엔 좋지만 실제론 불편투성이였던 통창 인테리어는, 유리 기술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빛 좋은 개살구’에서 ‘빛도 좋고 단열도 잘 되는’ 진짜배기로 탈바꿈했다. 단열 성능이 뛰어난 ‘로이(Low-E)유리’의 사용이 확대되면서부터다.
◇빛은 통과, 열은 막는 유리 속 비밀
건축물의 단열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창이다. 벽면에는 단열재를 넣어 열 에너지의 유ㆍ출입을 막지만, 유리는 그렇게 못한다.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 벽과 창에 손을 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유리는 벽에 비해 겨울에는 생각보다 차갑고, 여름엔 뜨겁다. 창의 유리를 통해 열이 쉽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정부의 에너지 절감 정책에 따른 건축물 단열성능 법규 강화로 2012년부터 창호에너지 효율등급제가 시행됐다. 고단열 로이유리의 보급이 크게 늘어난 것도 이 때부터다.
로이유리의 로이는 영어 ‘낮은 방사율(Low Emissivity)’의 줄임말이다. 방사율이 낮다는 의미는 원적외선을 반사해낸다는 뜻이다. 로이유리는 실외로 빠져나가려 하는 원적외선을 실내로 반사시켜 열 에너지가 외부로 방출되지 못하도록 막아 실내가 따뜻함을 유지하게 한다. 일반 판유리 대비 에너지 절감 효과는 50%에 달한다.
로이유리의 단열 효과 속에 숨은 비밀은 바로 ‘은’이다. 로이유리는 일반 유리에 은 박막을 코팅해서 만든다. 은이 로이유리의 핵심 소재가 된 이유는 전도성이 좋으면서 가격 수준이 적당하고, 색상 구현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반사율과 색상 조절 등을 위해 로이유리에는 은 외에도 여러 가지 금속과 세라믹 소재가 여러 층의 얇은 막 구조로 코팅된다.
방사율은 박막에서 전자가 얼마나 원활하게 이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는 곧 박막 재료의 전도성이 얼마나 뛰어난 지와 직결된다. 전도성이 높은 물질은 대표적으로 금, 은, 구리가 있다. 1970년대 로이유리의 생산 방식이 상업화하면서 이들 세 물질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는데, 결국 은이 최종 선택을 받았다. 금은 너무 비싸고 색상 구현이 어려웠으며, 구리는 가격은 저렴하지만 역시 색상 구현이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전투기 덕에 발전한 로이유리
일반적인 로이 코팅은 반도체를 제조할 때 쓰는 진공 증착법의 일종인 ‘스퍼터링(Sputtering) 공정’을 통해 이뤄진다. 공정 설비 내부 환경을 진공에 가깝게 조성한 상태에서 이온화한 아르곤 가스를 가속하여 타깃(코팅하려는 물질)에 충돌시키면 나노입자 단위의 타깃이 아래로 떨어지며 박막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은 코팅을 할 땐 이 설비 아래에 유리 기판을 두고 은에 아르곤 가스를 충돌시켜 떨어뜨린다. 그러면 유리 기판 위에 아주 얇은 은 박막이 형성된다.
로이유리는 코팅한 다층 막에 포함된 은 박막의 개수에 따라 싱글 로이, 더블 로이, 트리플 로이로 분류할 수 있다. 은 코팅 층의 개수가 증가하면 내부의 열을 반사하는 단열 성능과 외부 태양광선을 막아주는 차폐 성능이 향상돼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지만, 반대로 내구성과 생산성은 떨어진다.
최초의 로이유리는 꽤 오래 전에 탄생했다. 유리에 박막을 입히는 기술의 특허는 19세기 유럽에서 처음 등록돼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유리 코팅을 위한 기술에 적용되며 발전했다. 태양과 가까운 거리에서 비행하는 전투기 내부의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후 1960년대 들어 다양한 코팅 대량생산 방법이 개발되면서 상업화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유리를 두 겹 이상 겹쳐 그 사이에 은막 코팅을 하고 공기(가스) 층을 형성시킨 복층 로이유리가 개발됐다. 단일 로이유리보다 내구성과 단열 효과를 높인 복층 로이유리는 유럽이 에너지 절감을 위해 ‘그린 하우스’ 정책을 펴면서 대중으로 확산됐다.
로이유리는 주거용과 상업용 등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 특성이 다르다. 주거용 로이유리에서 중요한 요소는 유리의 단열 성능과 가시광선 투과율이다. 주거용 건물은 저녁 시간대의 주 생활공간으로서 냉방보다 난방 효율에 초점을 두고, 깨끗한 조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반면 상업용 로이유리의 핵심 요소는 태양열을 차단하는 차폐 성능과 유리의 색상이 꼽힌다. 상업용 건물은 낮 시간에 인구 유동이 많아 난방보다는 냉방 효율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태양열을 얼마나 잘 차단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또 건물 외벽의 대부분을 유리가 차지하기 때문에 어떤 색상의 유리를 사용하느냐가 건물의 심미성을 결정짓는다.
주거용과 상업용 로이유리 특성의 차이는 은막 코팅 층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복층 유리를 사용할 경우 주거용은 실내 쪽 유리의 바깥 면에, 상업용은 실외 쪽 유리의 안쪽 면에 각각 코팅 층이 적용된다.
◇편의성 높여 진화하는 창
최근에는 전자 장치와 결합해 창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스마트 창호’ 개발이 한창이다. 과거엔 단열성, 기밀성, 수밀성, 내풍압성, 방음성 등 전통적인 5대 성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창이 발전해 왔다면, 미래엔 편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핸들이나 유리에 디스플레이를 결합해 정보를 전달하는 창,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어도 실내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기 시스템을 갖춘 창, 유리나 블라인드로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탑재한 창 등 다양한 형태의 창이 개발 중이거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LG하우시스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창 손잡이 ‘히든 디스플레이 핸들’을 선보이며 국내 건축자재 업계 최초로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9)’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히든 디스플레이 핸들’은 IoT 기술로 날씨 예보와 대기 미세먼지, 실내 공기 질 등의 정보를 종합해 창 핸들에 내장된 디스플레이에 환기 관련 안내를 해주는 미래형 창 손잡이 제품이다. 눈이나 비, 미세먼지 등으로 창 개폐에 주의가 필요한 경우, 실내 공기 질이 좋지 않아 환기가 필요하거나 공기청정기를 가동해야 하는 경우 등 상황에 날씨와 대기 질에 맞춰 필요한 정보가 표시된다.
과거 단순히 밖을 내다보기 위한 구조에 불과했던 창은 점차 환기를 시키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용도로 바뀌면서 주거는 물론 사무공간에서도 없어선 안될 구조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자동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발전까지 겸하는 스마트 인테리어로서 변신을 계속하고 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