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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읽기] 집 근처에 공원이 있나요… 코로나 이후 더 중요해질 공간 민주화

입력
2020.05.09 04:30
수정
2020.05.09 09: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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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거주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3> 공간은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지난 달 치러진 21대 총선은 우리 사회의 성숙한 민주주의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많은 국민이 기꺼이 동참했고, 28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66.2%)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이처럼 일정 수준에 도달한 정치 민주화와 달리 아직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분야가 있다. 이른바 ‘공간 민주화’가 그것이다.

경제충격을 피하기 어려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간의 불평등이나 불균형 문제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득 양극화뿐 아니라 공간의 양극화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빈곤이 집중될 수도 있고 지역별 공공서비스의 질에 더 큰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공간적 분리(segregation)현상이 심화되고 공동체는 소통과 화합보다는 반목과 갈등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공간 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

◇도시공간도 누구나 동등한 사용권 가져야

공간 민주주의(spatial democracy)란 도시의 공공공간을 시민이 주인이 되어 민주적으로 이용하자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버스전용차로를 예로 들어보자. 본래 버스전용차로의 주요 목적은 대중교통활성화를 위해 버스의 통행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측면에서 해석하면 버스전용차로는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자가용은 길이가 5m내외인데 비해 버스는 11m내외로 두 배정도다. 만약 버스전용차로가 없는 도로에서 버스에 20명이 타고 자가용에는 혼자 타고 있다면 승용차 이용자는 10배나 넓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불공평하고 비민주적인 도로공간 배분이 아닐 수 없다.

1인 1표가 민주국가의 기본 원칙이듯, 도시의 공공공간(public space)에서도 누구나 동등한 점유권과 사용권을 가져야 한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걷는 사람 모두가 공공공간을 고르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자가용이 10분 빨리 가는 것은 많아야 서너 명에게 이로우나, 버스의 경우 적어도 수십 명의 ‘10분’을 줄여줄 수 있어 사회적으로 훨씬 편익이 크다.

혹자는 효율성을 근거로 반박할 지 모르겠다. 더 많은 돈을 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시장의 논리 아니냐는 주장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할수록 이용가치를 더 높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함께 공간에 대해서도 이 원칙은 상당히 강력하게 적용돼왔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대량생산되면서 도로는 자동차 통행속도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1세기 전만 해도 대부분의 도로는 마차와 자전거, 보행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심지어 차선도 없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도로에서 다른 통행수단은 원활한 차량소통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여겨졌다. 특히 가장 느린 존재인 보행자는 첫 번째 분리대상으로 취급됐다. 자동차중심의 도시에서는 ‘보차분리’가 더욱 강력하게 이루어졌으며 심지어는 자동차만 다니는 배타적인 전용도로도 보편화되었다. 최근 도시를 보행중심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지만 많은 도시에서 자동차 우선주의는 여전히 견고하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은 사적 공간에나 유효할 수 있다. 사적인 공간을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은 공간의 효율적 이용측면에서 바람직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원칙이 종종 공공공간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공공공간의 잘못된 배분은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다시 도로의 예로 돌아가보자. 차량소통을 위한 보차분리와 자동차전용도로는 속도감을 담보해내며 도시의 효율성을 높였다. 그러나 동시에 통근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원거리 통근을 가능하게 하여 무분별한 평면적 도시확산(urban sprawl)을 촉진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먼 거리에서 통근하는 비효율적인 도시구조를 양산한 것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공간배분 원칙이 생각지 못한 비효율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만약 도시고속도로가 많지 않고 도로공간이 교통수단과 상관없이 고르게 이용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대도시의 탄생은 어려웠을 것이며 훨씬 더 많은 보행자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 도심의 중앙버스전용차로.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도심의 중앙버스전용차로.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간의 양극화가 위험한 이유

국제연합(UN)에서 제시한 ‘포용도시(inclusive city)’는 공간민주주의와 맞닿아 있는 개념이다. 포용도시란 도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배제를 극복함으로써 양극화를 완화하고 소외계층들도 차별 없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뜻한다. 빈곤층과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편부모가정, 소수종교집단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배제의 대상들이 계획과 의사결정에 있도록 하여 도시공간이 이들을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민주주의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적 약자들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었을 때는 더욱 심각한 도시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면 공공공간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동네에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공원이 있다고 하자. 주민 대다수가 싫어한다고 해도 이 공원에 특정계층의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일정공간에 집중되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공공간의 지역적 차이로 인해 자연스러운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새로 조성되는 공원이나 도로는 정치력이 강한 상위집단의 거주지부터 공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잘사는 동네에는 공공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반면, 서민 거주지에는 변변한 공원조차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서울의 자치구별 1인당 공원면적은 강남구가 8.2㎡인데 반해 금천구는 0.3㎡에 불과하다. 공원 외에도 많은 공공공간이 있는 만큼 단순 비교일 수는 있지만, 이 같은 차이는 공간 양극화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의료기관도 공간민주화가 필요한 시설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구의 인구 1,000명당 병원 수는 5.2개인데 도봉구는 5분의 1 수준인 1.1개다. 인구 1,000명당 병상수의 경우 강남구는 16.5개인데 비해 가장 적은 마포구는 1.9개에 불과하다. 인구를 고려하지 않고 총량으로 봐도 불균형은 자명하다. 강남구는 병원수 2,619개, 병상수 8,368개로 단연 1위이며, 서초구와 송파구 등 소위 강남3구를 합치면 병원수는 서울 전체의 28.5%, 병상수는 21.2%를 차지한다. 강남3구의 인구는 서울전체의 16.1%에 불과한데 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공간민주주의

공간민주주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중요한 원칙이 될 필요가 있다. 공원이나 도로 같은 공공공간 역할이 한층 중요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팬데믹 상황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분석과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공간적 변화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른바 언택트(Untact) 문화로 급격히 전환될 것이란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활발한 대면접촉이 앞으로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도시공간 역시 재구조화를 피할 수 없고 공간의 민주화도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코로나19 이전과 동일한 효용을 얻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 넓고 다양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도시에서는 긴밀한 대면접촉을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랜선생활’이 대세가 된다면 주거공간의 확대요구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적 공간인 주택의 확장은 공적 공간인 주거지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일어났던 변화를 본다면 이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나 영화관과 같은 실내시설 이용을 자제하고 환기가 잘되는 집 근처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양재천에 많은 인파가 몰려 주말 통행을 금지시킨 것이 좋은 예다.

의료기관의 공간적 민주화도 필요해 보인다. 역세권, 숲세권에 이어 이미 ‘의세권’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의료기관 접근성은 오래 전부터 거주지 선택의 핵심적인 고려요인이다. 이번 코로나사태는 의료시설의 공적 성격과 공간적 민주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한 도시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환자를 수용하지 못해 타 지역으로 이송시킨 것 등이 중요한 예가 될 것이다. 모든 국민이 골고루 의료혜택을 받도록 의료시설의 적절한 공간 재배치가 필요할 것이다.

도시에서의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늘 마주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이념이기도 하다. 도시의 공공공간은 그 사람의 지위와 나이, 성별, 소득,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투표장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국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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