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필리핀 정부가 뒤늦게 죄수 1만명을 풀어준 까닭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필리핀 정부가 뒤늦게 죄수 1만명을 풀어준 까닭은

입력
2020.05.05 17:17
0 0
3월 27일 필리핀 마닐라 케손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비좁은 환경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마닐라=AFP 연합뉴스
3월 27일 필리핀 마닐라 케손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비좁은 환경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마닐라=AFP 연합뉴스

필리핀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죄수들을 풀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교도소 내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심각한 상황이라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로이터통신과 필리핀스타 등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마리오 빅터 레오넨 필리핀 대법관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재소자 9,731명을 석방하고 조만간 추가로 3,000여명을 더 풀어줄 것”이라고 2일 전격 발표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등이 3월부터 정원의 5배가 넘는 과밀 수용을 지적하며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경고한 지 한 달여 만이다.

문제는 교도소 내 확진 환자가 이미 많다는 점이다. 필리핀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교도소에서 감염된 코로나19 환자는 350명이다. 이 중 2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HRW 등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 여파로 800명 정원에 4,000명 이상이 수감 중인 케손 교도소만 하더라도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재소자를 무더기로 석방했으니 이들이 지역사회 감염을 부추길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필리핀의 뒤늦은 대처는 국제선 봉쇄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필리핀 정부는 최근 자국의 이주노동자가 매일 2,000명가량 입국하면서 2만명 규모의 격리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3~10일 전국 9개 공항을 통한 국제선 여객기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자국민의 대규모 입국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미리 격리시설을 늘리지 않고 물리적 봉쇄로 땜질한 것이다.

필리핀 정부의 불투명한 정보 공개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매일 신규 감염자와 사망자 수치를 명확히 발표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는데도, 강제 격리된 가구에서 발생한 확진 사례들은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중앙 정부가 감염 의심 환자들을 집 안에만 묶어두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수많은 확진 환자들이 통계에서 누락되고 의료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 지원의 비효율성과 포퓰리즘은 필리핀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고 있다. 확진 환자 치료와 확산 방지에 우선 투입돼야 할 재정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서 받은 긴급 차관이 빈민층 식료품 지원에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체 감염 예상 수치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7만여건만 검사한 방역 역량을 높이기보다 당장의 국민적 불만을 잠재우는데 더 신경 쓰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사태를 악용한 이런 일련의 조치와 행보들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장기 독재 체제 구축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하고 있다. 필리핀 군부 독재 시절이던 1972년 이후 처음으로 현역 군인을 지하철역 등에 포진시킨 현 상황은 비상사태 분위기를 극대화해 계엄령을 발동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리핀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두테르테 대통령을 비난하던 좌파 단체 관계자 6명을 검역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달 17일 유출된 필리핀 공군 참모총장의 내부 문건에 경찰과 군이 계엄령 발동 시 어떤 역할을 할지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다”고도 보도했다.

필리핀 상황은 악화일로다.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전날에도 295명이 추가돼 9,223명을 기록하고 있고, 사망자는 607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날 인접한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신규 확진 환자가 나오지 않은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