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에 직접 접촉해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상대방 귀 가까이에서 큰 소리로 고함을 친 행위만으로도 폭행죄가 성립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폭행 혐의로 기소된 A(51)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서울의 한 교회에서 상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을 걸지 말라”고 소리를 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상대를 다소 불쾌하게 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형법상 폭행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폭행죄는 사람의 신체에 유형력(고통을 주는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청각기관을 직접 자극하는 음향 역시도, 경우에 따라 유형력에 포함될 수 있다”고 A씨 주장을 물리쳤다.
재판부는 당시 폭행 상황을 두고서는 “A씨가 오른손을 모아 상대방의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상대방이 놀라 뒷걸음질을 쳤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며 “이런 행위는 직접 신체에 접촉하지 않더라도 불법적인 유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법원은 신체에 직접 접촉이 없더라도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이 있다면 폭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2017년 서울고법은 후임병의 귀에 전동드릴을 대고 굉음을 낸 선임병의 행위를 폭행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다만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까지 폭행죄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대법원은 2003년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반복적으로 폭언을 해 폭행죄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협박죄 등은 유죄로 봤지만 폭행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