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지옥문이 열렸다.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출신인 권인숙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4일 본보 인터뷰에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권 당선자는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폭로한 ‘미투 운동’의 당사자다. 21대 국회에서 발의할 1호 법안도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 처벌법’을 꼽았다. n번방 사건으로 드러난 미성년자 성착취 문제 해결에 역점을 두겠다는 취지다.
다음은 일문일답.
_21대 국회가 열리면 어떤 문제에 가장 관심을 기울일 생각인가.
“성평등 문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를 겪으면서 행정부의 판단능력과 시민들의 대응능력 등 모든 게 바뀌었다. 하지만 성평등 문제는 아직 갈등과 혐오의 문제로 남아 있다. 저출산 문제와 여성에 대한 차별, 권력의 부당한 전횡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평등 문제가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_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다. 어떤 입법적 보완이 필요한가.
“여성 문제에 대한 입법은 항상 미비했다고 본다. 성범죄만 놓고 보면 스토킹과 데이트폭력, 비동의간음 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가정폭력 이슈도 중요하다. 관련해서 제대로 된 데이터 조차 없을 만큼 문제제기가 그간 충분치 않았다.”
_20대 국회 막바지에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지만 미진했다는 평가다.
“우선 불법 영상물 삭제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아주 사소한 불법촬영 영상 하나도 2, 3일이면 전세계에 퍼져 2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다. 하지만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영상 삭제 전담팀 인원은 17명에 불과하다. 성범죄 문제를 통합 관리하는 정부부처도 없다. 국가정보원 수준의 대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_디지털 성범죄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디지털 성범죄로 우리사회 지옥문이 열렸다. 디지털 성범죄는 남성들의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관대하게 여긴 성문화가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간 것이다. 여성을 혐오하는 디지털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 다루는 50대 이상의 정책결정권자가 사이버세계를 너무 몰랐다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처리하고 싶은 1호 법안은.
“온라인 그루밍 방지법이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성적 착취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막는 법안이 없다. 접근 행위부터 성착취까지 모든 행위에 무관용 처벌을 해야 한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경고 시스템을 마련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법적으로 제도화 하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정치권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것도 과제다.
“성평등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국회에서 토론과 교육을 많이 하겠다.”
-여성 폭력 외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책은.
“고용상 성별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남성이 대기업 등 정규직을 차지하고 여성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에 주로 종사하는 ‘이중 노동시장’ 구조다. 여성 고용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김예슬 인턴기자
▦권인숙
1964년 강원 원주 출생. 1986년 서울대 재학 중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세상에 알린, 여성 인권 분야의 상징적 인물이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전공해 사우스플로리다주립대 여성학과 교수, 명지대 교육학습개발원 교수를 지냈다. 서울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소장,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3번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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