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 등을 탄생시켰던 KBS 다큐 ‘인간극장’이 5월 들어 탄생 20주년을 맞았다.
KBS는 4일 20주년을 맞은 5월 한 달 동안 특집편을 방송한다고 밝혔다. 6일엔 특별 다큐멘터리 ‘우리의 얼굴, 인간극장 20년’을 편성했다. ‘인간극장’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지난 20년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라는 자부심이다.
‘인간극장’은 무기수로 복역하다 휴가를 나온 모범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어느 특별한 휴가’ 편으로 2000년 5월 첫 전파를 탔다.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내건 이 프로그램은 TV에 흔히 나올 법한 유명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렇게 ‘인간극장’에 출연한 보통 사람들은 지난달까지 모두 1,032명에 이른다. 이들은 방송 출연이 자신들의 삶을 바꿨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2~3월 프로에 출연한 여덟 남매 ‘다둥이 아빠’ 김영진(53)씨는 “‘다자녀 가정은 힘들게 살 것’이란 선입견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으로 지난해 5월 출연한 이은영(49)씨는 “방송이 나가고 많은 분들이 내게 친정이 돼 줬다”고 고마워했다. 3년 전 출연한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64) 신부는 “노숙인 보호시설 ‘안나의 집’을 새로 지으면서 빚이 많이 생겼는데, 방송이 나가고 15억원이나 성금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인간극장’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마치 드라마처럼 5부작으로 편성해 선보이는 새 장르 ‘다큐미니시리즈’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출연자의 하루를 밀착 중계하는 방식은 최근 방송계 대세로 자리잡은 ‘관찰 예능’의 원조로도 꼽힌다. ‘인간극장’이 사회 변화를 오롯이 품고 있는 ‘타임캡슐’이란 평가를 받고, 동시에 ‘말아톤’ 등 감동적 휴먼 스토리를 다룬 영화의 뿌리가 된 것도 그 덕이다.
고충이 없는 건 아니다. 섭외가 쉽지 않아서다. 시청자 제보, 지역 사회의 추천, 기존 출연자의 소개 등 다양한 경로를 이용한다지만, 주변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되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동시에 보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만한 사람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다. 2년 전부터 ‘인간극장’을 책임지고 있는 최재복 PD는 “소재 발굴이 쉽지 않을 땐 무작정 어떤 동네를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며 수소문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20년을 맞은 ‘인간극장’은 어떻게 변할까. 프로그램 시작 때마다 흘러나오는 시그널 음악은 신윤식 음악감독이 만든 그대로다. 극 중 자막이나 대사에 쓰이는 클래식한 서체도 여전하다. 최 PD는 “앞으로도 출연자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사회 변화에 발맞춰 나가겠다”면서도 “큰 틀에서는 미니 다큐 그 자체를 잃지 않는, 고향을 지키는 맏형 같은 정체성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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