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ientacabezas. 스페인어로, ‘강의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듣고 있는 학생’을 뜻하는 명사란다. 예전 같았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 말인데, 요즘 비대면 수업에 낯설어 그런지 손을 든 학생처럼 사전에서 나를 불렀다. 학생의 이해 정도를 걱정하는 선생님들의 고민과,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한숨이 손에 잡히는 말이다. 어떤 현상을 가리키는 말은 구성원의 공감이 생긴 후에 나올 수 있다. 나는 교실에 선 지 25년이 넘어서야 이 현상을 헤아려 보기 시작했는데, 저 말을 가진 사회는 도대체 언제부터 공감대를 펼쳤던 것일까?
말은 그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그림이다. 5월 어버이날이 되면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에 어머니날, 아버지날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온다. 현대 사회와 다른 면이 있지만, ‘어버이’는 한국인이 오랫동안 가져온 가정에 대한 밑그림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또 스승의 날이 되면 교사나 선생님이 아니라 ‘스승’으로 부르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스승으로 기억되는 분은 적어도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분이다. 스승은 선생님이란 호칭어도, 교사라는 직업도 대신하지 못하는 말이다. 스승의 날이면 외국인 학생들은 ‘스승의 날을 축하합니다’란 메시지를 보내온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감히 축하하지 못한다. 그날 우리가 쓰는 ‘감사합니다’란 인사말은 국보급 표현이다.
어릴 때 파란 종이로 청사진을 찍어 본 기억이 있다. 얇은 종이에 가위나 연필을 올리고 햇빛을 쬐어 찍힌 모양 그림이 참 신기했다. 실물이 없으면 청사진도 없다. 마음이란 알 듯 말 듯한 것이지만, 실존하는 말은 곧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자 공감한 가치관임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이미향 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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