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부터 1893년 공황까지 기간을 미국 역사는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 부른다. 독점 자본이 약진하고 가난한 이민자들이 쇄도해 오던 시기, 부의 편중이 심화하던 시기다. 석유왕 록펠러(1839~1937), 철강왕 카네기(1835~1919), 철도왕 밴더빌트(1794~1877) 신화의 주요 배경이 그때다.
앨프리드 그윈 밴더빌트 시니어(Alfred Gwynne Vanderbilt Sr.)는 사업권을 물려받은 ‘철도왕’의 증손자다. 앨프리드의 아버지는 미국 북부와 중서부를 장악한 철도 외에도 각종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사업을 지키면서, 적십자사와 구세군 YMCA 등의 조직 및 후원에 공을 들인 이였다. 그는 22세에 숨진 장남과,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한 차남이 아닌 3남인 앨프리드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1899년 별세했다. 예일대를 졸업하자마자 친구들과 어울려 무려 2년간 세계 일주 여행을 벌이던 앨프리드는 일본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 엉겁결에 사업권을 물려받았다. 그는 일가의 핵심 사업이던 뉴욕중앙철도의 서기로 취업해 바닥서부터 일을 배웠다.
사업 승계 전 그는 여행과 사냥과 승마를 즐기는, 부와 교양을 갖춘 건달이었다. 친구들과 4륜마차를 몰고 유럽과 미국의 오지들을 누비고 다니는 일은 예사였다. 1901년 구입한 뉴욕 새거모어(Sagamore) 호숫가 별장에는 당시 이미 수세식 화장실과 냉온수 시설, 수력발전 설비와 볼링공 자동 수거장치를 갖춘 야외 볼링장, 테니스코트와 크로켓 경기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1901년 결혼했다가 바람을 피워 7년 만에 이혼했고, 3년 뒤 부유한 이혼녀와 재혼했다.
그는 1915년 사업 차 비서 한 명과 함께 영국 리버풀행 RMS 루시타니아(Lusitania)호에 승선, 5월 7일 독일 잠수함 U보트의 어뢰 공격으로 승객 1,198명과 함께 숨졌다. 참사 당시 그와 비서는 다른 승객들이 구명정에 오르는 걸 도왔고, 어린 아이를 안고 허우적대던 한 여성 승객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끈까지 묶어 줬다고, 수많은 생존자들이 증언했다.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었지만, 수영은 익히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와 비서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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