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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고발, 문학 향한 환멸 극복하기 위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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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고발, 문학 향한 환멸 극복하기 위한 일”

입력
2020.05.04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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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블러썸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금희 작가. 그가 데뷔 11년 만에 낸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소설가 김금희를 이룬 다양한 문학적 자양분을 돌이켜본 작업이다. 배우한 기자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블러썸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금희 작가. 그가 데뷔 11년 만에 낸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소설가 김금희를 이룬 다양한 문학적 자양분을 돌이켜본 작업이다. 배우한 기자

“상의 오랜 역사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작가들에게 그런 요구하지 마세요.”

지난 1월, 올해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자였던 김금희 작가가 수상을 거부하며 자신의 SNS에 올린 이 한 줄의 ‘트윗’은 문단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여겨져 온 이상문학상이 실은 ‘저작권 양도’라는 계약서 조항을 앞세워 작가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수상 거부에 동참하고 지난해 대상 작가인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하는 등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주최 측인 문학사상사가 올해 수상자 발표를 취소하고 계약서 조항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히며 일단락됐지만, 김 작가의 고발은 저작권을 비롯해 문학출판계의 각종 악습과 병폐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문단의 오랜 허상을 까발린 김 작가의 대찬 외침은, 실은 밤새 트위터에 글을 썼다 지우며 뒤척인 결과였다. 데뷔 11년 만의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낸 그를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블러썸스튜디오에서 만나 관련한 뒷얘기를 들었다.

“문제제기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고려하기 전에, 스스로 문학에 너무 환멸감이 들었어요. 이 환멸을 끊어내지 않으면 제가 작가 생활을 계속할 수 없겠다 싶더라고요. 트윗을 남긴 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반응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서였어요. 제가 독자를 많이 가진 작가니까 이런 고발을 할 수 있었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걸 재고 따지고 할 여유도 없었어요. 밤새 고민하다가, 제가 살기 위해서 한 일일 뿐이에요.”

작가로 데뷔하고 11년이란 시간 동안 20대와 30대, 40대를 모두 통과한 그는 만 마흔 살이 된 최근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미함’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배우한 기자
작가로 데뷔하고 11년이란 시간 동안 20대와 30대, 40대를 모두 통과한 그는 만 마흔 살이 된 최근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미함’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배우한 기자

이상문학상 사태를 둘러싼 소회를 비롯해 책에는 11년간 작가 생활을 하며 벼려온 여러 생각들이 담겼다. 고향 인천의 풍경부터 유년의 기억, 사랑과 연애에 관한 내밀한 생각,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바뀌게 된 삶 등. 여러 에피소드가 흩뿌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각 산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소설적 세계를 만들려고 했던 한 사람에 관한, 문학에 관한 여러 경험에 대한 고백”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특히 힘주어 쓰는 것은 사회문제에 발언하고 연대하는 작가의 자세다. 한 명의 독재자를 중심으로 한 불의가 있고, 이에 맞서는 일이 유일한 정의였을 때는 작가의 역할도 단순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젠더와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다. 김 작가는 “현실의 가장 냉엄한 기록물인 소설은 낙관의 결말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며 “이는 나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현실감각”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은 과거보다 더 힘든 것들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이나 제도가 정교하게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려면, 오염을 도려내는 게 아닌 오염을 정화하는 방식이 돼야 하니까요. 한국문학도 마찬가지예요. 과거 선배들이 문학이라는 공고한 성체 안에 모여 있었다면, 지금의 작가들은 각자의 타일을 하나씩 들고 서 있어요. 타일을 맞춰 성체를 이뤘다가, 다른 필요에 의해 해체할 수도 있죠. 그게 문학을 가볍게 여기거나 우리 세계가 없어서는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럴 뿐인 거죠.”

문학이라는 성체 안에 머무는 대신 타일 하나를 손에 쥐는 일을 선택했기에, 작가의 사명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밀도 높은 문장을 쓰기로 유명했던 그가 한 숨 덜어내고 산문을 쓸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완벽한 문장만이 작가의 성실성과 사명감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어요. 하지만 최근엔 사회적 발언을 하고 독자를 열심히 만나는 것도 작가의 일이구나 싶어요. 이제 겨우 문장에 숨통 틔워주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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