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직거래로 물건 판매를 한 지 두 달이 지나 구매자가 갑자기 물건에 하자가 있다며 환불 요청을 합니다. 환불을 해 줘야 하나요?” 끙끙 앓고 있던 고민을 앱 상담 게시판에 등록한 지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환불 의무가 없다”는 전문 변호사의 답변이 달린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기엔 부담스럽고 무시하자니 신경 쓰이는 생활 속 법률 문제가 앱 하나로 간단하게 해결이 된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법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리걸테크(Legal Tech)’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앱으로 택시를 잡고 숙소를 예약하듯이 대면 중심으로 이뤄지던 다양한 법률서비스가 비대면 플랫폼 기반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리걸테크의 대표적 영역은 의뢰인과 변호사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 서비스다.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한 ‘로톡’의 경우 이날 현재 변호사 2,000여명이 가입돼 있으며 누적 상담 수는 30만건, 총 방문자 수는 1,300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14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스타트업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네이버도 지난 3월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전문가와 이용자의 1대 1 상담을 주선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출범한 ‘지식인 엑스퍼트’ 서비스에 법률 부문을 신설한 것으로, 현재 변호사 60여명이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변호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상담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커 선뜻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하던 소비자 입장에선 이용자 후기를 바탕으로 원하는 변호사를 쉽게 선택해 저렴한 비용에 상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변호사 입장에서도 플랫폼은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네이버 관계자는 “대형 로펌에 소속돼 있지 않더라도 인지도를 높이고 다양한 송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식인 엑스퍼트 활동을 좋은 기회로 여기는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타다 사태’에서 보듯이 리걸테크 시장에서도 법조계와 사업자 간 갈등이 불거질 소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등록 변호사 수가 지난해 3만명을 넘어섰고 올해만 1,800여명이 새롭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등 ‘공급 포화’ 양상이 심화하면서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또 해외에서 이미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각종 리걸테크 기업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 수준으로 성장한 터라 언제 국내 시장을 두드릴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과거 우버의 국내 진출 시도에서부터 카카오 카풀, 타다로 이어진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과 택시업계의 갈등이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2016년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소개 사이트 4곳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바 있으며,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최근 네이버 엑스퍼트 법률 서비스에 반발해 네이버에 대한 형사고발을 검토하기도 했다. 지난해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준비했던, 변호사와 비(非)변호사 간 동업과 이익분배 금지 규정을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은 법조계 반발로 20대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리걸테크 업계는 법조인들이 혁신에 대해 보다 유연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인식됐던 타다와 달리, 리걸테크는 활용 방식에 따라 법률서비스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해외에서는 법률 문서 작성, 온라인 분쟁 해결 등 다양한 분야에 리걸테크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며 “업계가 혁신을 받아들이면 두 분야 모두 성장하는 방향으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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