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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기강과 소통 사이

입력
2020.05.0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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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군에서 발생한 기강 해이 사건들과 관련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군에서 발생한 기강 해이 사건들과 관련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3급 비밀인 암구호는 상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암호다. ‘화랑’이라 물으면 ‘담배’라고 답하는 식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오늘 암구호가 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가 곤욕을 치른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외국에선 암구호를 까먹은 전쟁 영웅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 독일 잠수함 유보트의 선장으로 이름을 날린 볼프강 뤼트 대령은 한밤 중 술에 취해 영내로 들어가려다 초병의 수하에 세 차례나 응하지 못해 총을 맞고 숨졌다. 초병은 군법회의에 넘겨졌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암구호 숙지가 군의 엄정한 기강의 시금석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 얼마 전 전방부대에서 병사들이 암구호를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유했다가 징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육군에 따르면 외박 후 복귀하던 한 병사가 카톡방에 암구호를 물었고, 동기 1명이 이를 알려줬다. 원래 암구호는 종이에 적거나 전화로 전파해서도 안 된다. 전쟁 영웅의 목숨마저 앗아간 3급 비밀이 우리 군에서는 카톡방을 통해 흘러 다니는 셈이다.

□ 병사들의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이 4월부터 전 부대에서 시행되면서 이런저런 사건ㆍ사고가 터지고 있다. 얼마 전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또 다른 공범이 입대 후에도 성 착취물 유포와 홍보활동을 계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병사들이 휴대폰으로 스포츠 도박을 하다 적발됐다. 휴대폰 사용을 병영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도 정책으로 여겨왔던 국방부는 달라진 정책이 군 기강 해이와 전투력 약화를 불러왔다는 오명을 뒤집어쓸까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군율을 어겨 베었다’는 표현이 많다. 7년 동안 120여회 군법을 집행했다고 한다. 전장의 승패는 평소 군 기강에서 판가름 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강은 타협이나 절충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병영문화 선진화와 민주화에 순기능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스마트폰 보급률 95%인 나라에서 휴대폰을 못 쓰게 하는 건 기본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 외부와 소통은 병사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심리적 안정에도 기여한다. 병영문화 혁신 이후 최근 5년 사이 인명사고, 군무이탈이 절반 이상 줄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휴대폰 사용으로 ‘당나라 군대’가 될 판이라는 식의 감정적 비판은 소모적이다. 기강과 소통 사이의 균형점 찾기가 필요하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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