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솝 우화에는 허영심 많은 까마귀 이야기가 나온다. 새들의 왕을 뽑겠다는 신 앞에 까마귀는 다른 새들의 깃털을 주워 치장하고 온다. 결국 까마귀의 원래 모습이 들통나게 되는데 가짜는 고대 시대에도 문제였던 모양이다.
천성적으로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한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이익과 정서적 만족을 위해 기만하고 이용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합리화에 능하고 무의식적인 변신이 가능해서 웬만한 배우들의 연기를 능가한다. 가짜라는 것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더 잘 포장된 가짜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적인 이득을 위해 꾀병(malingering)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성격적인 문제에서 나오는 가짜 증상과 다른 종류의 가짜 증상들도 존재한다. 실제로는 질환이 없는데 본인은 증상을 호소한다. 신체형 장애(somatoform disorder)가 대표적이고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두통, 소화불량, 신체통증, 감각 이상 등을 호소하지만 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다.
증상이 애매모호하거나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꾀병과 다른 것은 이런 증상들은 심리적 문제들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검사상으로는 가짜일지 모르지만 심리적으로는 진짜다. 실제로 신체 질환이 있는 환자들도 심리적 상태 때문에 증상이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심리적 문제에 의한 신체 증상의 치료는 공감(empathy)을 필요로 한다.
옷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 지 몰라도 빌려 입을 수는 있다. 그러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는 잠시도 걸어 다니기가 어렵다. 그래서 ‘공감’, 즉 남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을 서양에서는 남의 신발을 신어 본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사건이나 상황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묘사한다. 심리적 갈등과 관계를 잘 표현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도록 만든다. 공감도 마찬가지다. 마치 내가 된 것처럼 나의 고통을 정확히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각종 진짜 증상과 가짜 증상들이 교차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자연(自然)의 뜻은 ‘사람의 의도적인 행위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비틀즈의 ‘Let it be’라는 노래 제목처럼 진짜이든 가짜이든 있는 것을 단지 존재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은 어렵지만 지혜로운 일이다.
요즘 유행하는 명상 수련법 중 하나인 마음챙김의 기본은 수용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 지금의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인다. 현재 앓고 있는 몸과 마음의 병을 받아들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잘 판단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의 힘듦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 그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병을 극복하는 것은 어떠한 도움도 없이 스스로 이겨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청한다. 종종 사람들은 병을 다스리지 않고 병을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보다는 현재의 치료에 감사하는 긍정적 마음가짐이 오히려 완치에 더 도움이 된다.
요즘 레트로가 열풍이다. 뉴(new)와 레트로(retro)를 합쳐 뉴트로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의미도 있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는 고대의 지혜를 다시 새롭게 들춰 보는 것도 좋다. 고대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가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는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경솔한 사람들에게 쓸 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때도 사람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의 고뇌를 가지고 있었다.
명품과 잘 만든 모조품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드러난다. 진심을 다하는 마음은 명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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