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게임기 45대를 향해 몰려든 구름 인파 속 환호와 탄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게임 시장이 뜻밖의 호황을 맞고 있다. 집에 머물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게임이 여러 여가활동의 대안이 된 덕분이다.
특히 일본 닌텐도가 2017년 출시한 휴대용 게임기 ‘스위치’는 코로나 특수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휴대용 게임기이면서 동시에 TV 같은 모니터에 연결해 기존 비디오 게임기처럼 활용이 가능한 ‘하이브리드 형’ 게임기인 스위치는 최근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동물의 숲’이 큰 힘이 됐다. 동물의 숲 시리즈는 ‘동물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플레이어가 함께 살게 되는 게임으로 2001년 첫 선을 보였다. 마을을 꾸미고 동물 주민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힐링 게임’으로 인기가 많은 닌텐도의 스테디셀러다. 3월 최신작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출시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스위치 열풍을 몰고 왔다.
스위치 이용자들이 모이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위치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온·오프라인 판매 소식을 공유하고 있다.
평소 스위치를 사고 싶었던 기자도 연휴 기간 동안 스위치를 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스위치 물량이 이전보다 많이 풀릴 것이라는 이른바 ‘카더라 통신’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았기 때문이다.
5월의 첫 날이자 연휴 둘째 날이었던 1일. 오전 중에 스위치 추첨 판매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을 카페를 통해 접했다. 스포츠로 따지면 ‘빅 리그 개막전’ 급으로 중요한 날이었다. 특히나 그 구하기 어렵다는 ‘동물의 숲 스페셜 에디션 스위치’가 다량으로 풀린다니. 인턴기자는 스위치를 구해 남은 연휴 기간 동안 즐기고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동물의 숲 팬인 지인 2명과 함께 경기 수원시의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추첨에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한 ‘팀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팀 플레이를 위해 작전 짰다…하지만 소용 없었다
대형마트 인근은 개점 시간인 오전 10시보다 30분 이른 오전 9시 30분에 도착했다. 안전 사고가 일어날까 봐 선착순이 아닌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들에게만 판매하는 방식으로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일찌감치 나와 마트가 문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임기라는 특성 상 10대·20대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인턴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친구들과 함께 온 10대·20대뿐만 아니라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팀을 이룬 10대, 혼자서 현장을 찾은 것으로 보이는 20대·30대 게임 마니아들도 눈에 띄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 지자 긴장감이 높아졌다. 마트 입구 근처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마트 측에서 별도로 줄을 세우지 않아 마치 학창시절 운동회를 떠올리게 하는 달리기 경쟁이 펼쳐졌다. 그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로만 봤던 이른바 ‘오픈 런(open run)’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목적지는 3층 장난감 전문 판매 코너 앞.
1층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 일행은 빠른 순서로 매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나. 3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와 더 가까운 후문을 통해 먼저 뛰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뿔싸. 그런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트 보다 먼저 문을 여는 5층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기다리다 뛰어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현장에는 가족 단위로 찾은 희망자들도 많았다. “아빠 먼저 가서 줄 서있을게”라고 외치며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는 한 남성을 보면서 진한 부성애에 감동하기도 했다. 순간 그냥 나중에 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빨리 가지 않으면 추첨권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헐레벌떡 따라 뛰었다.
저마다 다양한 전략으로 스위치 구매에 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로 다른 출입구를 통해 들어와 마치 ‘도원결의’ 하듯 3층에서 모인 사람들도 있었다. 기자일행도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다. 각자 다른 번호대를 받아 당첨 확률을 높이겠다는 계산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편 혼자서 고독하게 무선 이어폰을 낀 채 마치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가 드리블 하듯 유려하게 군중 속을 헤쳐나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언뜻 봐도 1,000명 넘는 사람들이 추첨권을 받고자 3층부터 건물 바깥까지 줄을 섰다. 모두 다닥다닥 붙어 추첨권을 간절히 기다렸다. 다행히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스위치를 향한 뜨거운 열기와 함께 마스크의 답답함이 더해지자 마치 한 여름 같은 더위가 엄습했다.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열을 받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누구도 나가지 않았다. 더위를 못 참아 그냥 뛰쳐나갈까 했던 기자도 그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꼭 사야겠다는 오기도 생겼다.
추첨 티켓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치열한 신경전
이날 마트 측은 스위치 중에서도 구하기가 어렵다는 ‘닌텐도 스위치 동물의 숲 에디션’ 판매 행사를 진행했다. 45대를 추첨을 통해 판매했다. 현장에는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마트 측에서 추첨권을 300장 밖에 준비하지 않아 이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운이 좋았던 기자는 300명 안에 들어 추첨권을 따냈지만, 추첨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지방에서 차 끌고 여기까지 왔는데 추첨권도 못 받았다. 보상해라”, “마트 측에서 줄을 질서 있게 세우지 않아 일찍 와서 기다렸음에도 추첨권을 받지 못했다”며 마트 관계자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추첨권 받은 사람들도 “우리는 늦게 온 줄 아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마트 관계자를 사이에 두고 큰 소리로 ‘티키타카’를 주고 받았다. 게임기를 사는 것도 아니고 게임기를 살 수 있는 ‘후보’가 된 것뿐인데도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졌다.
마트 관계자는 “지난번 (동물의 숲 에디션) 판매 행사 때는 100여 명 정도가 왔기 때문에 오늘은 300장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결국 마트 측은 추첨권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으며 다음 판매 행사 때 쓸 수 있는 추첨권을 앞당겨 나누어줬다. 아수라장 같은 상황은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는 듯 했다.
추첨까지 가는 진통은 오래갔지만, 추첨 자체는 빠르게 이뤄졌다. 45개의 번호를 부르기까지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나 둘 당첨 번호가 불리자 현장에서는 환호와 아쉬움의 탄식이 쏟아졌다. 당첨된 사람들에게 박수를 쳐주며 축하해주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기자 역시 함께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마지막 추첨번호를 부르는 순간까지 축하의 박수를 치고 있을 줄은. 결국 인턴기자와 일행의 팀플레이는 실패로 끝났고 빈손으로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게임기를 향한 부성애에 눈물이 찔끔…하지만 양보는 없다
스위치 품귀 현상이 지금과 같이 심각해진 이유로는 이른바 ‘되팔이’ 증가가 꼽힌다. 온라인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는 최근 구매 후 포장도 뜯지 않은 스위치를 되파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소비자 정가인 36만 원에 웃돈을 얹어 판매하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품귀 현상이 일어나자 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물의 숲 에디션’의 경우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일반 스위치보다 더 큰 인기를 끌면서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이를 악용한 피싱 사이트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한국 닌텐도 측은 지난달 21일 공식 SNS를 통해 “동물의 숲 에디션은 한정판이 아닙니다” 라며 동물의 숲 에디션은 지속적으로 출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닌텐도 측은 “희망 소비자 가격은 36만 원입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웃돈 얹어 되팔기 일쑤…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이날 추첨에서 탈락의 아쉬움을 삼킨 이모(33)씨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나들이를 자제하다 보니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 생활이 필요했다”라면서 “(스위치는) 혼자서 플레이 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 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어 더 좋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품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만큼 기회가 되면 다시 오프라인 판매 행사에 참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오프라인 판매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온라인 물량이 거의 대부분 품절돼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프라인에 풀리는 물량이 더 많다.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았던 대구에서도 이날 같은 행사가 열렸는데, 무려 5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행사 현장에 모인 모습이 포착됐다. 앞으로도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프라인 판매 행사장에서 구매 전쟁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이주현 인턴기자
이태웅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