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험지 인천 동미추홀을 도전 후 아쉬운 낙선 신인 남영희
“유시민 이사장 180석 발언은 문제 없어…비평 그만 둔다는 게 아쉽다”
“유리천정 깨보려는 도전… 부족한 점 더 크게 받아들이는 계기”
“아쉬움이 많지만, 얻은 게 더 많다. 잃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시작할 때 가진 것도 별로 없었다.”
기개만큼은 당선자였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남영희 4ㆍ15 총선 인천 동미추홀을 더불어민주당 후보자는 시종일관 큰 목소리와 호탕한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무조건 된다’고 되뇌다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지만, 첫 선거에서의 낙선은 그를 움츠리게 하지 못했다. 171표, 그는 이번 총선에서 전국 최소 표차라는 석패에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냈다.
“171표 차로 떨어지고 나서 기사가 많이 났다. 낙선 인사를 하러 갔는데 주민들께서 많이 알아봐 주셨다. 이번 일이 오히려 제 목소리를 더 잘 들리는 스피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라던 남 후보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모범생으로 자라던 그는 대입을 앞두고 “부모님 비행기 태워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인하공전 항공운항과로 진학했다. 항공사 직원 가족들은 싼값에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대학에서는 ‘형’들과 농구를 하며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을 주름 잡았다. 당시 함께 ‘마구 농구하는 서클’ 활동을 한 선배들은 총선에 나선 그의 든든한 지지자들이 돼 주었다.
“1970년대생에 전문대 출신, 방송통신대 졸업자. 대학원을 가고 청와대에서도 일해봤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 추천을 받거나 꽃가마를 탄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대한민국 보통의 수준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는 “저처럼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도 입법 기관에 필요하다. 기득권을 깨는, 유리천장을 깨겠다는 각오였다. 용감했지만, 무모했다”고 첫 선거 도전의 의미를 되새겼다.
남 후보자의 첫 사회생활은 대한항공 승무원이었다. 승무원을 업으로 삼게 된 데는 효심이 바탕이었지만, 그의 삶을 정치로 이끈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두 사람이다. 이번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말이 그의 마음을 다독였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보여주고, 착한 사람이 이기는 역사를 보여주자는 말씀을 늘 가슴 속에 담고 있다”던 그는 “선거 과정에서 상대를 비방하지 않고 불공정한 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저와의 약속을 지켜냈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이번엔 바꿀 수 있다”는 할머니의 응원이 큰 힘 돼
공교롭게도 그의 낙선에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 인물이 유 이사장이다. 자신의 발언이 혹여 낙선에 영향을 끼쳤을까 책임을 느낀다는 취지였다. 유 이사장은 사전 투표 참여율이 높아지자 “진보 진영이 180석을 차지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는데, 일부에서는 이 발언이 보수 성향 유권자를 자극했다고 분석한 것이다. 유 이사장은 선거가 끝난 뒤 남 후보를 포함해 근소한 차이로 패한 후보자들을 향해 사과하며 정치 비평 은퇴를 선언했다.
남 후보자는 유 이사장의 발언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투표 당일까지 경주마처럼 전력 질주하느라 몰랐다고 했다. 그는 “눈곱만큼도 유 이사장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80석 발언도 보수 진영이 신나게 활용한 것일 뿐, 발언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남 후보자는 “지금도 전혀 서운한 마음이 없다. 평론 떠나신다는 말씀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남 후보자는 이날 인터뷰 중 말을 하다가도 자주 목을 가다듬었다. 유세 과정에서 쉬어버린 목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동미추홀을에서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상대는 4선에 도전하는 윤상현 당시 무소속 후보자, 재선 인천시장 출신인 안상수 미래통합당 후보자였다. 그에 반해 남 후보자는 선거에 처음 도전하는 신인이었다.
“처음 동미추홀을에 나서면서 윤상현이라는 벽을 깨겠다는 자신감이 번쩍 들었다. 삶도 너무 달랐고 깨어있는 시민들도 그런 부분에서 제게 점수를 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제가 질 거라는 의심은 한 번도 안 했다.”
남 후보자는 선거 운동을 나선 뒤 등골이 서늘해졌다고 했다. 그는 “막상 현장에 나서니 동미추홀은 정말 험지였다”고 회상했다. 남 후보자는 “내딛는 곳마다 윤 당선자의 입지가 대단했지만, 믿을 건 시민들의 지지와 힘이었다”며 “‘이번엔 바꿀 수 있다, 바꿀 때’라는 응원, 할머니가 건네주신 박카스에 보람과 감동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제가 얻은 표는 모두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덕”
남 후보자는 선거 직전 진행된 일부 여론조사에서 소폭이지만 윤 당시 후보자 등 상대보다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던 그가 마주한 현실은 석패였다.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냐는 뻔한 질문에 “천당 문턱까지 갔다가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지만 워낙 회복력이 빠르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주변에서 재검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당에서도 해보자는 말들이 있었다고 했다.
남 후보자는 “재검하겠다고 하고 나서 부정선거니, 사전투표 문제라니, 한국 선거 관리 시스템 문제로 비화하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승복하는 게 맞았고, 객관적으로 저를 봤을 때 제 부족한 점을 더 크게 받아들여야 했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재검을 포기하겠다는 말에 속상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가 향한 곳은 오대산 비로봉 중턱에 있는 한 산사였다. 2년 전 부친상의 아픔을 강원도의 산에서 추슬렀던 그는 이번에도 산에서 깨달음을 구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미물인지 자연 앞에서 알게 된다더니, 제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달았다. 아마 남영희를 보고 표를 준 사람은 3명, 우리 가족밖에 없었을 거다. 모두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보고 뽑아줬을 거다. 제 노력이 더 필요했다.”
미추홀로 돌아온 남 후보자는 171이라는 숫자를 새롭게 해석하기로 했다. 그는 낙선 후 다시 나선 길거리에서 스스로 “171 남영희”라고 소개하고 있다.
“171표 차로 지고 나서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저를 기억하시게 된 계기가 되더라. 그래서 171 남영희라고 하는데, 사실 제 키가 171㎝다. 이제 저를 알리는 새 상징이 될 것 같다.”
“당이 허락한다면 동미추홀에서 끝장 보겠다”
남 후보자는 “당이 허락하는 한 미추홀에서 끝장을 보겠다”고 다짐했다. 첫 선거, 전국 최소 표차로 석패라는 아픔은 ‘짐승의 비천함으로 성현의 고결함을 이룬다’는 유 이사장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할 기회가 됐다고 남 후보자는 밝혔다. 그는 원외 지역위원장으로서 미추홀에서 다시 시작한다. 앞날을 향한 각오를 묻자 그는 잠깐의 침묵을 거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정치 현실은 고결하지 않더라. 현안과 민원은 복잡하고 머리 아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는 일은 고상하진 않지만, 이를 통해 이루려는 우리 사회의 변화는 고결한 것이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선거가 됐든 정치가 됐든 제가 추구해 온 방향이 어긋나지 않도록 동력을 잃지 않는 것이 급선무의 과제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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