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근로자 “환기시설 없었다”
“안전관리자 단 한번도 못 봤다” 증언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화재 참사 현장의 법 위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화재사고에 취약한 공사현장에 필수적인 안전관리책임자는 없었다. 환기시설을 갖추지 않은 채 가연성 물질인 시너를 다루는 작업이 진행됐다는 현장 근로자 증언이 나왔다.
1일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현장 근로자인 이모(46)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열흘 가까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안전관리자는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고 당일 지하 2층에선 우레탄폼 작업과 함께 냉장ㆍ배관설비 작업 중에 용접기 등 불꽃이 튀는 다양한 작업이 진행됐다”고 확인했다. 당초 우레탄폼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유증기에 엘리베이터 설치공사 시 이뤄진 용접작업 불꽃이 튀면서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은 없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발화 원인을 두고 혼란이 있었다.
특히, 발화 지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지하에 고위험 인화물질인 시너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씨는 “당시 지하엔 도장, 방수 작업에 필요한 인화성 물질인 시너통도 있었지만, 화재감시자나 환기시설 없이 작업이 이뤄졌다”며 “용접 작업 중 불티가 시너통에 튀면서 폭발이 났고 이후 불길이 급속도로 번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 현장 목격자들은 철제 통이 터질 때 나는 ‘펑’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증언했다. 지하의 시너통 존재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불길이 순식간에 축구장 1.5배 면적의 건물 전체로 번진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사고 발생 1시간 전쯤 장비를 가져오기 위해 인근 다른 현장으로 가면서 화를 면했지만 동료 2명을 잃었다.
안전관리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잇따르면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은 관련 자료와 함께 발화원인을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사고 직후 복수의 근로자들이 “사고 당일 안전교육이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용접과정에서 덮개나 방화벽 등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온 상태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공사비 100억원이 넘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은 안전관리책임자를 반드시 둬야 한다. 산업 안전 등을 수행하는 관리감독자도 따로 지정해야 한다.
이날 5시간 가량 2차 현장 감식을 진행한 경찰은 “수사 중”이라며 말을 극도로 아꼈다. 정요섭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안전책임자가 현장에 있었는지, 환기시설이 설치됐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만 답했다. 또 지하층에서 안전관리 수칙을 어긴 채 용접작업이 진행됐다는 의혹에 대해 “현장 감식에서 많은 종류의 작업 공구가 발견돼 용접이나 용단작업을 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설명하기 힘들다”면서도 “작업 공구를 감정 기관에 보내 (무슨 작업이 있었는지를)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이 넓은데다 감식이 광범하게 진행되면서 화재원인 규명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소방 당국은 건물 내부 곳곳에서 이뤄진 우레탄폼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유증기(기름증기)가 확인되지 않은 화원을 만나 폭발이 일어난 뒤 불길이 번진 것으로만 추정하고 있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레탄폼 작업 과정에 유증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관리감독 책임자가 반드시 환기를 하고, 다른 작업 전 유증기가 제거됐는지 등을 점검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부실해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이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천=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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