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나돈 지 오래다. 코로나 사태가 증시를 타격한 지난 2월 이래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대거 매도해 증시 급락세가 이어지자, 개미라 불리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 매도 물량을 적극 매수해 시장을 방어하게 된 현상을 가리킨다. 구한말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조어다. 하지만 외국인 매도에 맞선 개미들의 투자행태를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비장하게 투쟁했던 선조들의 역사에 빗대는 건 좀 송구스럽다.
▦ 이번에 개미들이 공세적 매수에 나선 건 1990년대 이래 수차례 발생한 증시 폭락과 반등을 경험하면서 쌓은 학습효과에 기반한 ‘이기적 행동’에 가깝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시 급락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세를 탔다. 그리고 그런 회복세를 이끈 건 늘 영업과 재무구조가 견실한 시가총액 상위주들이었다. 개미들은 이번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최근 2개월여간 삼성전자만 7조2,000억원 이상 매수하는 등 대형 안전주를 집중 겨냥했다.
▦ 하지만 폭락 후 반등세를 노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에 대한 역발상 투자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익률에선 큰 재미를 못 봤다. 일례로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2월 17일 6만2,000원을 고점으로 하락세를 탔다. 3월 13일엔 5만원대가 무너져 4만9,950원까지 떨어졌다. 그때 동학개미가 매수했다고 치면 지난달 29일 현재 5만원을 기록했으니, 시세차익은 고작 50원에 불과한 셈이 됐다. 문제는 우량주 투자에 실망한 일부 개미들이 국내 증시에 상장된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연계 상장지수증권(ETN) 매수로 쏠렸다는 점이다.
▦ 개미들은 지난 3월 9일 국제 유가가 20% 넘게 폭락한 시점부터 WTI ETN 매수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WTI ETN은 실제 원유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 거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선물 만기가 닥치면 다음 만기일로 계약을 이전하는 ‘롤오버’를 해야 하고, 그 경우 유가 상승이 기대될 경우 롤오버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쥐고 있을수록 손실이 발생하기 십상인 상황에 갇히게 됐다. 왠지 구식 장총 몇 자루 손에 쥔 동학군들이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일본군의 함정에 빠져 몰살당한 ‘우금치 전투’가 재현되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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