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청소노동자도 의료진과 코로나 사투 동행… 아프면 쉴 권리 함께 누려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청소노동자도 의료진과 코로나 사투 동행… 아프면 쉴 권리 함께 누려야”

입력
2020.05.01 01:00
2면
0 0

 여해동 이화의료원 비정규직 지부장 “방호복 입고 수술실 등 청소” 

 정규직 노조가 지원해준 덕에 마스크 등 차별 없이 지급받아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노조를 결성한 뒤 올해 첫 노동절을 맞이하는 여해동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지부 새봄지부장이 29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노조를 결성한 뒤 올해 첫 노동절을 맞이하는 여해동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지부 새봄지부장이 29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올해 노동절은 감회가 새롭네요.”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여해동(61) 이화서울의료원 새봄노조 지부장은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는 소감을 묻자 멋쩍게 웃었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유급휴가를 즐기는 것은 대부분 노동자에겐 당연한 일. 하지만 여 지부장이 수십년간 일하며 이 권리를 누린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 노조활동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사투에서 버티며 맞이하는 올해 노동절은 그에게 말 그대로 ‘새봄’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 노조가 겨울을 이겨내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처럼 새롭게 되라는 의미에서 새봄노조라는 이름을 붙였다.

100일이 넘게 지속되는 신종 코로나 유행 일선에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는 의료진이 있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국내 신종 코로나 환자 수는 1만명대 초반, 치명률은 2%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의료진들 혼자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한 건 아니다. 쏟아지는 의료폐기물을 치우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닦아낸 청소노동자들이 없었다면 병원은 금세 바이러스 진원지가 됐을지 모른다.

여 지부장을 비롯한 청소노동자 145명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왔다. 이들이 일하는 이화서울의료원은 김포공항과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으로, 2,000건이 훌쩍 넘는 진단검사가 이뤄지면서 “발이 휘청거리고 손이 떨릴 정도로” 일해야 했다. 진료실, 입원실은 물론 탈의실, 휴게실, 지하주차장까지도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특히 감염위험이 높은 수술실을 청소할 때는 전신방호복과 N95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고,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다 못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하루에도 수 차례씩 들리는 응급차 소리였다. 여 지부장은 “50~60대로 초로에 접어든 청소노동자들은 감염의심자가 오면 더더욱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감염에 대한 공포의 근원에는 고용 불안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인력업체 소속으로 병원엔 간접고용 신분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질병에 걸리더라도 정규직ㆍ직접고용 직원들에게 보장되는 의료 서비스 할인을 받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인력 부족으로 2~3주에 한번 쉴까 말까 한 과중한 스케줄이 반복됐고, 몸이 아프더라도 해고 등 불이익을 당할까 쉬는 일도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이때 작년 가을 조직한 새봄노조가 도움이 됐다. 당초 노조를 만든 건 주5일제를 시행하기 위해서였지만, 신종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막아주는 보호막이 됐다. 실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졌던 지난 2월 말 일부 병원에선 의료진과 청소노동자의 물품을 차별 지급해 논란이 됐지만, 이화의료원에선 이런 차별이 발생하지 않았다. 여 지부장은 “2월 초부터 청소노동자에게도 의료진과 동등한 물품 지급을 하라고 확실하게 요구했고 병원에서도 수긍했다”고 말했다.

새봄노조가 차별 받지 않았던 데는 정규직 노조의 지원도 한몫 했다. 허창범 이화의료원노조 지부장은 “병원 안에는 60여 직종의 노동자가 유기적으로 함께 일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아프면 모두가 위험하다”며 “모두 같은 부담을 지는 만큼 감염병 대비와 교육에 차별이 없도록 여러 차례 소통을 했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는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새봄지부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단체교섭으로 유급휴직이 조금씩 보장되고 있지만, 여전히 아파도 쉴 권리 등은 요원하다. 여 지부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신종 코로나 이후에도 관심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여해동(오른쪽)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지부 새봄지부장과 허창범(왼쪽) 이화의료원지부장이 29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여해동(오른쪽)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지부 새봄지부장과 허창범(왼쪽) 이화의료원지부장이 29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