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사퇴를 하면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기자회견 내용에 알맹이가 빠졌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향한 사과다. 그의 회견은 ‘부산 시민’으로 시작해, ‘부산 시민’으로 끝났다. “죄스러운 말씀” “머리 숙여 사죄” “이루 말할 수 없는 송구함” 등 수사를 바꾼 사죄의 대상은 모두 부산 시민이었다. 그가 말한 총 스무 개 문장 중 피해자를 향한 건 “공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으로 사죄를 드린다” 뿐이었다. 심지어 “불필요한 신체 접촉은 강제추행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며 성추행을 모호한 표현으로 얼버무렸다.
□ 성폭력으로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수감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사과를 번복했다. 2018년 3월 김지은 전 비서가 ‘미투’(나도 당했다)를 공개한 직후, 그는 페이스북에 사퇴 의사와 함께 사과의 글을 올렸다. 그는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 받았을 김지은씨에게 죄송하다. 어리석은 행동에 용서를 구한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3일 뒤 검찰에 출석할 때는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말을 바꿨다.
□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로이 레위키 명예교수 연구팀이 밝혀낸 ‘사과의 정석’이 있다. 75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거쳐 사과에 포함돼야 하는 여섯 요소를 후회의 표현, 잘못을 저지른 경위 설명, 책임 인정, 뉘우침 선언, 피해 복구 약속, 용서 호소로 추렸다.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책임 인정’이었다. 잘못을 구체적으로 시인해야 한다는 거다. 두 번째는 ‘복구 약속’. 사과만으로 그쳐선 안 된다는 얘기다. 사과문에서 빼도 무방한 건 ‘용서 호소’였다. 책임 인정 대신 동정에 호소한 오 전 시장이나, 아예 번복한 안 전 지사는, 엄밀히 말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를 했다.
□ 하기는 40년 간이나 사과를 외면한 가해자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역사는 12ㆍ12를 민주화를 후퇴시킨 군사반란으로 기록하는데, 그에게는 동지들과 호화 오찬을 하는 ‘기념일’이다. 억울하게 스러진 5ㆍ18의 넋들과 유족은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데, 그는 재판 때마다 졸음을 참지 않고 고개를 떨어뜨린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그의 정신은 결백을 주장할 때만 또렷해지나 보다.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참회하는 ‘사과의 정석’을 바라는 건 무모한 일일까.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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