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철 대표, 네이버 SK거쳐 출판 플랫폼 ‘에스프레소북’ 창업
일상 기록 후 출판까지 ‘나만의 책 만들기’ 앱 개발…가입 회원 6만명
“소아 환우들이 쓴 감사 책,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여행기 기억에 남아”
최근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이 활발해지면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요. 이런 일상을 한 권의 책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책을 출판한다고 하면 돈도 많이 들고 과정도 복잡할 것 같은데요.
삼성SDS, 네이버, SK 플래닛 등 대기업에서 16년 동안 엔지니어로 일하던 한 회사원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무리 없이 책을 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습니다. 출판 플랫폼 전문 스타트업 ‘에스프레소북’을 운영하는 황상철 대표 이야기입니다. 황 대표가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출판 서비스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있을까요?
◇“에스프레소 한 잔 하며…” 일상 기록 후 책 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일을 마친 뒤, 집에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 놓고 본인이 쓰고 싶은 시나 수필, 일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거죠. 그게 나중에 모여서 책으로도 나오는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어요”
황 대표는 이 같은 서비스를 꿈꿨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셀프 출판을 위한 서비스 앱 ‘하루북’입니다. 하루북은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글쓰기부터 디자인ㆍ편집ㆍ인쇄 등 책 출간까지 전 과정을 지원합니다. 이 앱을 통해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요?
하루북은 현재 모바일로 이용 가능한데요. 앱을 다운받아 설치한 뒤 먼저 본인의 일상이나 쓰고 싶은 글을 기록합니다. 글은 비공개 설정이 기본으로 ‘남이 내 글을 보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글을 앱 사용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면 ‘공개’ 설정을 적용하면 됩니다.
본격적으로 글 작성! 글자로만 한 페이지를 채워도 되지만, 자신만의 콘텐츠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이지에 직접 찍은 사진을 넣는 건 물론, 앱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이미지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두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이미지들입니다.
또 글자 크기, 위치, 색상, 폰트 등 모두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데요. ‘나만의 책 만들기’가 앱의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이 글이 책으로 나왔을 때를 생각하며 디자인하면 좋겠죠. ‘나는 디자인하기 귀찮은데’ 싶으면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 선택한 뒤 글만 작성해도 됩니다. 앱은 200여종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어 이용자는 자신의 글 성격에 맞는 이미지를 선택해 사용하면 되는 것이죠.
◇커피 한 잔 가격으로 ‘나만의 책’ 만들기
이제 어느 정도 콘텐츠가 완성됐다면 책 만들기를 할 수 있는데요. 이때 책 만들기 비용은 이용자가 지불합니다. 먼저 만들 책의 제목과 페이지 수 등을 정합니다. 최소 20페이지부터 365페이지까지 가능한데요. 지난해 기준 책 만들기 가격은 20페이지 4,900원, 36페이지 6,500원, 108페이지 1만5,200원, 365페이지 3만4,000원 등 페이지 수에 따라 내는 금액이 달라집니다. 책 한 권 사는 가격으로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책 만들기를 결심했다면 자신이 그 동안 기록한 글 가운데 실제 출간될 책 페이지에 들어갈 내용을 지정합니다. 페이지를 모두 채운 뒤 결제를 하고 주문자 정보를 입력하면 끝인데요.
하루북에서 출간되는 모든 책은 전 페이지가 컬러지만 흑백으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책 주문 가격이 할인됩니다. 책을 주문한 뒤 검수를 거쳐 인쇄 완료까지는 딱 하루가 걸립니다. 배송 거리에 따라 이용자에게 책이 배달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책 편집 후 주문하기 버튼을 누른 뒤 책이 인쇄소에서 나오기까지는 하루면 된다고 합니다.
지난해 기준 하루북에서는 한 달 평균 70~100종의 책이 출간됐습니다. 올해 4월 기준 앱 가입자는 약 6만명이고요. 특히 전국 70여개 초ㆍ중ㆍ고 학교 및 도서관, 공공기관에서 하루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앱 사용이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 요청으로 이번 달 안으로 데스크톱에서도 사용 가능한 웹 버전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창업 전, 회사 생활을 할 때부터 책을 곁에 뒀다는 황 대표는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현재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출판 플랫폼 업체를 창업한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진 황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원래 책과 친했나요
“창업 전 엔지니어로 15년 넘게 일하면서 정보통신(IT) 분야 책을 쓰고 번역하는 걸 좋아했어요. 블로그, 커뮤니티 활동도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 이미 이 사업을 하기 전에 출판업계 사람들도 많이 알았고 책이랑 친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프로그래머로 산다는 것’ 등 IT 관련 책을 6권 정도 내기도 했죠”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다녔는데, 왜 갑자기 창업에 나섰나요
“처음에는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전자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 하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진짜 그만두고 3~4개월 뒤에 바로 서비스 오픈을 했죠. 에스프레소닷컴이라는 서비스로 2017년 6월쯤 시작했어요. 하루북 서비스는 2018년 말에 오픈했고요”
-사업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주변에 사업하는 친구들이 좀 있는데 그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하지 마라. 그냥 주말에 취미로 해라’였어요. ‘너 월급도 많이 받고 개발도 잘하는데 왜 돈 안 되는 거 하려고 하냐’고 하더라고요. 이미 사표 냈다고 하니까 ‘사표 물러라’라며 다들 말렸고 찬성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사업이 자리를 잡은 건 언제부터였나요
“처음에 하루북을 바로 서비스한 건 아니에요. 2017년 6월쯤 에스프레소닷컴이라고 ‘블로그 쓰듯이 책 쓰세요’라는 모토의 온라인 기반 전자책 만들기 서비스가 첫 아이템이었어요. 첫 사업이니 잘 될 리가 없었죠. 2018년에는 이용자가 꾸준히 올라갔지만 문제는 제대로 돈을 못 벌었어요”
-왜 돈을 못 번 건가요. 에스프레소닷컴이 어떤 서비스이기에
“에스프레소닷컴은 이용자가 책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직접 지불하는 하루북과는 반대로 책 만들기 비용을 회사 측에서 부담하는 방식이었어요. 좋은 글을 봐뒀다가 1년에 20권을 냈죠. 출판사에서 1년에 1종 내는 곳도 있는 걸 고려하면 엄청나게 많이 낸 거죠. 저자들은 좋아했지만 매출이 정체되기 시작했어요. 책이 팔려야 수익을 내는데 당시에는 책도 잘 팔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하루북 서비스를 오픈한 건가요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2018년 도쿄 도서전을 갔는데 우연히 본 책이 누군가의 하루하루 일상이 모여 1년이 되는 책이었어요. 맨 마지막 장이 12월 마지막 날로 완결되는 책인데 이때 일상이 모여 곧 책이 된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죠. 2018년 말에 하루북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초기 가입자는 1,000명 정도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6만명으로 늘었죠”
-일상, 하루가 모여 책이 된다는 뜻은 알겠지만, 하루북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각해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하루를 쓰다’로 하려고 했는데 이미 상표 등록이 돼 있더라고요. 고민하다 책의 가장 좋은 소재는 사람들의 일상이라 생각했고 그게 쌓이는 게 책이라 하루북으로 정했는데 지금은 그게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저희 주문 제작 시스템이 주문부터 배송까지 하루 만에 끝나기 때문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금 이름과 공교롭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단 한 권도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인쇄소에서 흔쾌히 작업을 해주나요
“처음에는 인쇄소에서 면박을 많이 당했죠. 소량 인쇄는 단가가 안 맞으니까 같이 일을 안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직접 뛰어다니면서 저와 코드가 잘 맞는, 제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인쇄소를 찾았죠.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인쇄 맡기는 물량도 늘어나니까 이제는 반대로 인쇄소 측에서 연락을 해오는 경우도 있어요. 앞으로 인쇄소도 늘려갈 생각입니다”
-해외 진출이 거의 성사됐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면 취소됐다고 들었는데요
“대만 진출 계획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전면 취소됐어요. 2020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이 2월 4일부터 열리기로 돼 있었거든요. 그 행사에 하루북이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 출판 플랫폼으로 참가하고, 도서전 방문객 중 신청한 분들을 대상으로 ‘나만의 책 만들기’ 이벤트도 진행했는데 도서전이 취소되면서 해외 진출 계획도 무산됐죠. 그래서 올해 목표를 해외가 아닌 국내 시장 확장에 주력하는 것으로 바꿨어요. 이번 달 공개될 웹 버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책 만들기 가격이 저렴한데 수익이 남나요
“책을 제작할 때 이용자들이 내는 금액 가운데 10~15%가 수익금으로 떨어지는 구조예요. 책을 소량으로 만들어주면서도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건 자동화 때문이죠. 제작 과정 대부분이 자동화인데 앞으로는 현재 사람이 하고 있는 검수도 인공지능(AI)으로 자동화시키려고 해요. 이런 방식은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지금 시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력도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들 책을 봤을 텐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지방에 있는 소아 환우들을 돌보는 병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근속한 선생님이 병원을 떠나게 되셨대요. 그래서 병원에 있는 동료들이 하루북 함께 쓰기 기능을 이용해서 선생님을 위한 책을 만들었어요. 이 책을 선생님 떠나기 전에 주고 싶다고 기한에 맞춰 보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또 며느리가 시어머니하고 친정엄마와 함께한 여행기를 쓴 책도 기억이 나고요”
-하루북을 이용해 책으로 만들면 좋을 콘텐츠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가장 좋은 건 여행기인 것 같아요. 여행 당시 느낀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남겨두면 나중에 더 기억에 많이 남잖아요. 사진과 글을 마음대로 배치해서 넣을 수 있으니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여행 후기 콘텐츠로 책을 많이 만드세요. 또 친구나 애인, 가족들에게 책을 만들어 주면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이 되죠”
-책 쓰기를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사람들은 책을 쓴다고 하면 꼭 대단해야 된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죠. 그 일상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고요. 저희 모토가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거든요. 책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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