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지지층 축산농가 위기 몰리자
식량 공급에 필수 인프라로 지정
육가공 노조 “우리가 부품이냐”
“인구 1000명당 검사 건수 韓 추월”
경제 재개의 근거로 내세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활동 재개 방침과 감염 억제를 위한 방역 노력이 연일 충돌하고 있다. 경제와 공중보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딜레마 상황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국방물자생산법(DPA)에 근거해 육류가공 공장을 식량 공급에 필수적인 인프라로 지정하고 생산을 즉각 재개토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발동 이후 업계 종사자들에겐 개인보호장비와 근무지침이 제공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육가공 공장 폐쇄는 국가 비상사태 상황에서 식량 공급망의 작동을 위협한다”면서 “미국인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공장을 계속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 내에선 코로나19 여파로 육류 공급부족 사태가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업계 전문가들은 감염증 확산 이후 최소 20곳 이상의 육가공 공장이 확진자 발생 또는 주(州)정부 권고를 이유로 문을 닫았고, 그 결과 돼지고기와 소고기 처리량이 25% 가량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공급자들도 비상이 걸렸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축산농가들이 돼지와 소, 닭 등을 살처분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들 공장이 ‘핫 스폿(집중발병지)’으로 지목돼왔다는 점이다. 대다수 종사자가 밀집된 주거환경에서 지내는 이민자들인데다 협소한 냉장시설에서 동료와 어깨를 맞대고 근무하고 있어 감염에 극히 취약하다. 미 식품산업노조(UFCW)는 “현재까지 육류포장 노동자 5,000명이 확진 판정을 받거나 격리돼 있고 2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앞서 26일 미국 최대 육가공업체 타이슨푸드의 존 타이슨 회장이 “공급망이 무너지고 있다”며 호소문을 낸 것도 직원 보호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에 대응하는 차원이란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과 노동단체들은 공장 재가동 전 노동자 보호조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로버트 스콧 하원의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충분한 안전조치 없이 공장 재개를 강제하면 더 많은 감염과 사망이 발생하고 궁극적으로는 육류 공급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콜로라도주 육가공업체 노조위원장은 “정부와 업체가 우리를 대체 가능한 부품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아랑곳 않고 한국의 검사 역량을 넘어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등 경제활동 재개에 몰두하고 있다.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미국이 인구 1,000명당 코로나19 검사 건수에서 ‘골드 스탠다드(기준)’가 된 한국을 지난주에 넘어섰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며 ‘경제 재개 전 검사부터 확대하라’는 비판을 적극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백악관 행사에서 “우리는 검사에서 세계 최고”라며 “다들 한국 얘기를 하는데 미국이 얼마나 잘해왔는지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얘기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세 둔화는 더디기만 하다.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현재 감염자 수는 101만명을 넘어섰고 누적 사망자 수는 6만명에 육박했다. 공영 라디오방송 NPR은 “코로나19가 확산한 3개월간의 사망자 수가 베트남전 당시 미군 전사자 규모(5만8,220명)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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