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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오거돈 사태의 방조자들

입력
2020.04.29 16:40
수정
2020.04.29 17:19
22면
0 0

※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시청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시청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이런 걸 방조(傍助)라고 하나 보다. 지난 23일 오거돈 부산시장은 자신이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오 전 시장은 “피해자분들께 사죄 드리고, 남은 삶 동안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오 전 시장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뭘 했나 싶다. 경찰은 오 전 시장이 사퇴한 계기가 된 이달 초 성추행 사건 외에 지난해 ‘미투’ 의혹이 제기된 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시 사안이 불거졌을 때 부산시 정무라인은 관련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론사 보도를 막기에만 급급했다. 부산시청 내 상당수 직원들도 직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어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유튜브 방송인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부산시청 부근까지 찾아와 오 전시장의 ‘미투’의혹과 관련된 방송을 현장 촬영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부산시 소속 공무원 대부분이 관련 내용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시청 내부에선 어떤 문제 제기도, 잘못에 대한 지적도 나오지 않았다. 지역 시민단체들도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없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다. 오 전 시장의 주변인들이 방조자 역할을 한 셈이다.

오 전 시장은 2018년 11월 부산시 산하 기관의 용역업체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뒤 대상자들과 간담회를 겸한 오찬을 가졌다. 이때 오 전 시장의 앞과 양쪽에 여직원들이 앉아 있는 장면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오 전 시장이 배석까지 일일이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냥 오 전 시장의 취향(?)에 맞춰 직원들이 알아서 자리를 정했을 것이다. 계속적인 방조가 이뤄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오 전 시장에 대해선 과거의 또 다른 성추행 사건과 대학총장 시절 성추행 무마 의혹까지,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또 뭘 했는가. 아무리 작은 잘못도 그냥 넘어가고 반복되다 보면 큰 범죄가 되기 마련이다. 더구나 성추행은 작은 잘못도 아니다.

오 전 시장은 이처럼 별다른 제지가 없는 상황에서 성추행을 반복하다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뒷북 치는 소리도 나온다. 부산시 측은 “조직 내 성차별적 관행과 제도가 없는지 실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성인지 감수성 향상과 성희롱,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성 비위 사건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에 따라 일벌백계하고 사건 예방을 위한 전담팀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 감사위원회도 공직기강 특별감찰을 벌이기로 했다. 구석구석 살펴 잘못을 찾아내겠다는 취지이니,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사단이 나고 나서야 나온 때늦은 대책이라 한심할 뿐이다.

2009년 가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오 전 시장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오 전 시장은 부산지역의 대학 총장이었다. 오 전 시장은 행사장을 잠시 나오더니 벡스코 실내 로비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인 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연신 연기를 뿜어댔다. 황당했다. 그때 벡스코의 한 직원이 달려와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막았다. 오 전 시장은 결국 쫓겨나듯 떠밀려 밖으로 나갔다.

반복된 오 전 시장의 성추행 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진작 누군가가 강하게 제지했더라면 어땠을까. 누군가가 직언을 했다면 또 어땠을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 전 시장의 반복된 악행이 쉽게 고쳐지진 않았을 터지만 적어도 주변인들의 방관과 사태의 무마가 치명적 결말로 이어지는 일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크다.

부산시에만 방조자들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회사와 학교 등 우리 사회 어느 조직에나 성폭력 방조자들이 있을 수 있다. 범죄의 방조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권경훈 부산취재본부 차장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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