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배제한 영화제가 있을 수 있을까. 방송은 되나 시청자가 볼 수 없는 TV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다.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내달 28일 막을 올리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벌어지게 됐다. 열흘간 한국경쟁ㆍ국제경쟁ㆍ한국단편경쟁 부문 25편만 상영하고, 관계자와 심사위원만 영화를 볼 수 있다. 개ㆍ폐막식은 열리지 않고, 해외 초대 손님은 아예 없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신풍경이다.
전주영화제의 결정은 코로나19로 국내 영화제들이 맞닥트린 위기 상황을 극명히 보여준다. 전주영화제는 당초 4월 열릴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개최가 한달 뒤로 미뤄졌다. 코로나19 확진자 급감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생활방역으로 전환한다고는 하나 결국 다중 행사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극복하지 못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전주시 측은 코로나19 확산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영화제 취소나 행사 대폭 축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영화제는 결국 시상으로 신진 감독을 격려하고, 신작 개발을 지원하는 산업 관련 행사만 치르는 고육책을 택했다.
‘무관객’ 전주영화제는 이후 열릴 국내 영화제들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영화제를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전주영화제 사례를 근거로 삼아 영화제 축소 또는 취소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전주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더불어 국내 3대 영화제로 꼽힐 정도로 행사 규모가 크다. 지난해에는 45개국 영화 275편이 상영됐고, 순수 관객만 8만여명이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무관객 영화제는 일종의 수사이자 말장난으로 온라인과 스트리밍 등을 융합한 영화제를 왜 고민하지 않았나 의문”이라며 “이후 영화제는 더 큰 고민만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당장 6월 18일 개막하는 제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고민에 빠졌다. 전주영화제의 무관객 결정이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7월 9일부터 열리는 부천영화제도 전주영화제의 조치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부천영화제 관계자는 “(전주영화제 결정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 방안들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하는 부담은 확실히 커졌다”고 말했다.
영화제들은 관객 안전 대책 외에도 상영작 수급 등 코로나19로 발생한 여러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할 상황이다. 해외 유명 감독과 스타 배우 초청은 이미 물 건너간 상태다. 상영작 확보 고민이 가장 큰 곳은 올해 10월 열릴 예정인부산영화제다. 5월 열리던 칸영화제 연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칸영화제는 6월 말로 영화제 개최 시기를 한차례 옮겼다가 지난 12일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다. 유명 감독의 신작이 칸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이고 이후 다른 영화제에서 소개되던 기존 형식이 흐트러지게 됐다. 부산영화제는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서 칸영화제 주요 상영작들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가을 개최가 유력해진 칸영화제와 부산영화제 일정이 겹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동철 부산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칸영화제 첫 상영을 고려하는 영화들이 다음 일정을 확정하지 못해 이에 대비하고 있다”며 “보통 8월 중순쯤 되면 부산영화제 상영작 95%가 확정됐는데, 올해는 (변동이 많아) 눈여겨보는 영화들을 쌓아두는 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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