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군도 진입한 구축함 퇴각
중국이 영해를 침범한 미 군함을 몰아내면서 “지역안보를 불안하게 하지 말고 국내 전염병부터 통제하라”고 훈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으로 항공모함, 이지스함 등 해상 주요 전력이 잇따라 삐걱대는 미국에게 뼈아픈 충고다. 중국이 전염병 대처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국을 향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PLA) 남부전구사령부 대변인을 맡고 있는 리화민(李華敏) 대교(우리의 대령과 준장 사이 계급)는 28일 “미 태평양함대 소속 이지스구축함 배리가 시사군도의 중국 영해로 진입해 바로 퇴각시켰다”면서 “미국의 도발은 국제법과 관련 규범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중국의 주권과 안보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해 지역의 안보위험을 고조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자국 내 전염병 예방과 통제에 집중하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응한 국제사회의 협력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군사행동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파라셀제도라고도 불리는 시사군도는 남중국해의 수십 개 산호초로 구성된 곳으로 중국 하이난섬에서 330㎞ 가량 떨어져 있다. 1974년 베트남과 전쟁을 치르면서 중국이 점령한 이후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남중국해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불린다.
이에 미군은 매년 군함을 시사군도에 보내 중국의 동향을 살펴왔다. 따라서 영해 침범 자체가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다만 중국이 미 군함을 이 지역에서 쫓아내면서 당일에 즉각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건 전례가 없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9일 “미군 내부에서 코로나19가 수차례 발병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존재감과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며 “중국 영해를 침범한 건 그 같은 미국의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와 해리 트루먼호, 이지스구축함 키드 등에서 잇따라 코로나19 감염자가 늘면서 이들 군함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상태다. 반면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이 이끄는 항모전단은 동아시아를 누비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산케이신문 등 일본 매체들은 “지난 11일 대만섬 연안을 지나 남중국해에 진입해 기동훈련을 마친 랴오닝 항모가 28일 다시 북상해 동중국해로 향했다”고 전했다.
한편,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검출된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과 코로나19 발원지 공방을 벌이는 중국이 향후 공세를 강화할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공정원 원사인 장쉐(張學) 하얼빈의대 학장은 코로나19 환자 21명의 게놈(유전체) 서열 분석결과를 공개하면서 “전염원은 단 하나로, 외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기존 중국인들 사이에 확산된 바이러스와는 분명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얼빈에서는 지난달 19일 미국에서 귀국한 유학생으로부터 비롯된 감염이 아파트 이웃과 병원 의료진 등 80여명으로 확산됐다. 이에 학교 개학을 연기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원을 통제하는 등 방역 수위를 상향 조정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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