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학생들, 규탄 기자회견 열어
숭실대에서 ‘성소수자’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 설치 문제를 두고 다시 교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학교 측의 현수막 설치 불허 결정을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권고를 숭실대가 따르지 않으면서다.
숭실대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은 28일 오전 숭실대 베어드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의 거듭된 성소수자 차별행위를 규탄하고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방인 측은 “지난해 학교 측의 현수막 게시 불허 조치는 성소수자 학생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말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행위였다”라며 “숭실대는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고 생색내기식이 아닌 다양성이 존중 받는 학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수막 설치를 둘러싼 교내 갈등은 지난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방인이 교내에 ‘숭실에 오신 성소수자ㆍ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합니다!’란 내용을 현수막을 게시하려 했지만 학교 측이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다. 기독교 대학인 만큼 기독교 정신을 고려할 때 성소수자 관련 행사는 허용하기 어렵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었다. 이에 이방인은 인권위에 학교 측 조치는 ‘차별’이라며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최근 숭실대에 “성소수자 모임에 대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게시물 게재 불허를 중지하라”고 시정권고를 내리며 진정인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날 인권위의 시정권고를 수용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학교 측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숭실대의 성소수자 배척 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숭실대는 총여학생회와 성소수자 모임 등이 2015년 11월 개최한 인권영화제에서 김조광수ㆍ김승환 부부의 결혼생활을 담은 ‘마이 페어 웨딩’을 상영하려 하자 “영화제 내용이 대학 설립 이념이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대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당시 인권위는 “대학에 종교의 자유와 자율성이 있다고 인정되지만 이를 이유로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하는 행위는 허용할 수 없다”며 시정권고를 내렸다.
김이희윤 대학ㆍ청년 성소수자모임연대(QUV) 행정팀장은 “평등은 모두가 일상의 모습을 영위할 수 있을 때 달성될 수 있다”라며 “숭실대 측의 성소수자 차별 행정은 교육기관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학교 관계자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현장을 촬영하다 학생들에게 발각되는 소동도 있었다. 학생처 관계자는 촬영 이유에 대해 “학내 행사라 기록용으로 촬영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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