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파친코 규제’가 제일 늦게 이뤄졌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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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파친코 규제’가 제일 늦게 이뤄졌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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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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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의 신일본, 신인류] <10>코로나19에도 살아남은 파친코

“1인당 10만엔이면 우린 60만엔이네?”

아베 내각이 모처럼 발 빠른 코로나19 대책을 내놨다. 국적불문, 소득불문, 연령불문의 ‘3불’에 기반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1인당 10만엔씩 5월부터 순차적으로 지급하겠다고 한다. 이달 20일 정기각의에서 최종 결정됐고, 정확한 명칭은 ‘특별정액급부금’이다.

일본 도쿄의 한 우체국 직원이 1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해 주민들에게 배포될 이른바 ‘아베 마스크’를 들어 보이며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육류구입권, 여행상품권…. 업계 눈치만 살피는 정치권

사실 코로나19 시국이 지속되면서 일본의 정책 대처는 엉망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웃음거리가 된, 일본 정부가 각 가구당 2매씩 무상으로 배포한 면 마스크, ‘아베노마스크’는 불량품이 가득했다. 결국 이토추 상사는 아직 배포되지 않은 수천 만장의 마스크를 회수해 결점을 보완한 뒤 재배포하기로 결정했다. 재배포 결정이 다시 실소를 자아낸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경제대책의 일환으로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고기권과 어류구입권을 상품권 형태로 주자는 아이디어도 족의원(族議員) 중심으로 제기됐다. 족의원은 각종 이익단체의 후원을 받으며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로 여당의 중진급 의원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일본 어업협동조합과 육식가공업협회 등이 미리 확보한 각 분야의 재고가 코로나19 사태로 팔리지 않을 것을 염려해 이 분야의 족의원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반발을 샀고 이쪽의 상품권은 사라졌지만, 다른 분야는 여전히 활동 중이다.

최근 등장한 ‘고 투 트레블(Go To Travel) 여행상품권’ 정책도 그렇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각 지역의 중추산업인 관광업을 재건하기 위한 방안인데, 문제는 이 정책이 지금 과연 필요한가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 정책의 뒤편에는 여행관련업계와 친분을 과시하는 족의원들이 존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긴급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지난 8일 일본 오사카시의 한 파친코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오사카=교도 연합뉴스

◇가장 늦게 영업 규제가 떨어진 파친코

지금 일본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파친코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각에서는 파친코 규제는 재일동포 차별이라고 말하는데, 파친코는 코로나19 규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가장 늦게 규제가 이뤄졌다. 도쿄의 경우 지난달 25일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야간 접객업을 자숙해달라 요청했고, 29일 시무라 켄의 사망이 알려진 후 4월 3일부터 나이트클럽, 카운터바, 접객용 술집 등의 심야 유흥업은 사실상 선제적으로 휴업했다.

하지만 파친코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4월 8일 긴급사태선언이 떨어진 후에도 파친코는 계속 영업했다. 즉, 차별을 받지 않았다. 도쿄 우에노, 정확하게는 히가시우에노 1번지부터 6번지까지를 흔히 ‘파친코촌(パチンコ村)’이라 부른다. 파친코에 관한 모든 것들은 이 거리에서 퍼져나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파친코 관련 조합들도 많다. 그 중에 업장 중심의 최대 단체 ‘파친코체인스토어협회(PCSA)’가 있다. 이 단체에 정치분야 어드바이서로 이름을 올린 국회의원이 40명이다. 자민당 의원이 22명이고, 이 안에는 여성 최초로 중의원 예산위원장을 역임한 노다 세이코 의원 같은 중량감 있는 인사도 포진해 있다.

몸이 부딪힐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게임을 즐기는 파친코는 코로나19 감염의 초위험지대로 꼽히지만, 일본 정부는 가장 늦게 파친코 영업장 규제에 나섰다. 박철현 제공

◇다닥다닥 붙어 게임, 파친코는 초위험지대

사실 파친코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한 것은 4월 1일 있었던 고이케 도지사의 기자회견에서다. 이 기자회견 말미가 되어서야 “왜 3밀(밀접, 밀집, 밀폐)의 상징인 파친코에 대한 규제는 없느냐”는 기자들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감염증 전문가들은 “파친코에서 집단감염(클러스터)이 발생했다는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생각해도 파친코는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아침부터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서고, 들어가서도 거의 몸이 부딪힐 정도로 밀착한다. 기계를 돌리다가 자리를 뜨면 금세 다음 사람이 와서 방금까지 다른 사람이 잡았었던 레버와 핸들을 움켜진다. 게다가 평균 연령층은 50대다. 코로나19 감염에 최적의 장소이다.

그런데도 가장 늦게 휴업이 이뤄졌고, 지금도 당당히 업장을 운영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우에노만 하더라도 세 군데 정도가 문을 열고 있다. 파친코 업종이 차별을 받았다기 보다 오히려 우대를 받았거나, 아니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이번 긴급사태선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이라 봐야 한다. 로비가 작용했거나, 혹은 정말 믿을 수 없지만 3월에는 파친코에서의 감염이 없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과거야 어찌되었건 지금 일본은 감염경로를 모르는 시중감염자가 전체 감염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형편이다.

◇일부 영세업장 “영업 불사” 아베 정부 방조

PCR 검사가 아닌 ‘클러스터 부수기’에 중점을 뒀던 초기 방역대책은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파친코는 죄가 없다며 문을 여는 건 전염병 시대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실격이다. 물론 파친코 업계에서도 할 말은 있다.

긴급사태선언 이후 계속 업장을 열었던 우에노 C 파친코의 점장은 “우리 같은 영세 업장은 문을 닫으면 한 달 안에 망한다”며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똑같은 거니 더 강한 조치가 나올 때까지 최대한 영업할 생각”이라고 내게 직접 말했다. 도쿄도가 지시를 따르지 않는 업장 이름을 홈페이지에다 공개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4월 24일에야 휴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같다’는 생각을, 일선 현장에 심어준 건 결국 아베 정부다. 사실 정부의 경제활동 규제 지침은 휴업과 보상을 한 세트로 해야 한다. 정부 지시에 따른 휴업이며, 그로 인한 손실은 보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보상을 둘러싼 정책이 지금까지 엉터리였다. 앞서 말했던 고기권, 어류권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세대당 30만엔(350만원 상당)을 지급한다는 현금 급부안도 그러했다. 지급 기준이 개인이 아닌 세대당이며, 작년 소득과 비교했을 때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증명이 있어야 한다.

이 기준을 듣는 순간 아내는 “우리 위장 이혼 할까?”라고 농담했을 정도다. 세대를 둘로 나누면 60만엔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것부터 이미 이 정책은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평등성의 문제도 걸린다. 한 명이 살아도 30만엔, 우리 집처럼 여섯 명이 살아도 30만엔이라면 누가 봐도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이다.

파친코 영업장 규제에도 일부 영세 업자들은 가게 문을 계속 열고, 사람들도 여전히 몰려들고 있다. 박철현 제공

◇집단감염 속 파친코엔 여전히 사람들 가득

지난 한달 여 동안 이런저런 정책들이 모두 폐기 처분되고 최종적으로 나온 것이 바로, 앞서 말한 3불을 토대로 한 ‘1인당 10만엔’ 안이다. 4월 14일에 발표된 NHK 월별 정기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2017년 7월 이후 처음으로 30%대(39%)로 떨어지자 자민당과 연립내각을 이루고 있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가 직접 관저를 찾아 아베 총리,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과 4자 회담을 연 직후 이 안이 나왔고, 지금까지와는 전례가 없는 신속한 전개를 거쳐 일주일만인 20일에 최종 결정되었다.

각 기초자치단체가 우편물로 신청서 용지를 가가호호 배달하면, 거기에 세대주의 구좌번호를 기입한 후 반송용 봉투에 넣어 우체통에 넣으면 끝이다. 마이넘버카드 소지자는 인터넷으로도 신청이 가능하다.

이 안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자 아이들은 “이번엔 정말로 주는 건가?”라는 신중한 의견부터 “아빠 10만엔 받으면 내 통장에 다시 넣어줘야 해!”라는 환희로 나뉘어졌다. 물론 “세대주 통장으로 들어가면 오빠 통장으로 들어간다는 거잖아. 받는 즉시 다 뽑아서 다 현금화해서 가져와”같은 다소 강압적이며 불신에 찬 아내의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아내의 말도 일리는 있다. 우리 집이야 별 문제없지만, 세대주로 대부분 설정돼 있을 남편이 만약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거나 파친코나 경마 등 도박중독자, 혹은 서류상 세대주일 경우 세대원들은 별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실제로 벌써부터 일본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는 ‘세대주 아닌 개인지급’이라는 해시태그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에 돌입한 후 이런 유의 과감한 정책결정은 처음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어차피 일본은 정상적인 방역대책으로 코로나19를 진정시킬 수 없다. 지금도 일일 최대 검사량은 8,000건이 안되고, 도쿄는 확진율이 40%를 넘어섰다. 검사하러 가면 둘 중 하나는 거의 확진자라는 소리다. 자연스럽게 집단감염으로 넘어가고 있다. 거리에는 우울함이 그치지 않는다. 아직도 문을 연 파친코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혼돈의 시대에 그나마 돈맛이라도 조금은 느껴봐야 정신적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박철현 작가

 박철현 작가는 중앙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저널리스트를 비롯해 게임플래너, 술집 주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다 현재는 인테리어 업체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네 명의 아이를 뒀다. 일본 생활 이야기를 담은 ‘일본 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 ‘어른은 어떻게 돼’ ‘이렇게 살아도 돼’ 같은 에세이를 냈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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