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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자발적 기부’ 성공하려면

입력
2020.04.27 18: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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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종배(미래통합당) 전해철(더불어민주당) 간사, 염동열(미래한국당) 간사 내정자가 27일 국회 예결위원장실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종배(미래통합당) 전해철(더불어민주당) 간사, 염동열(미래한국당) 간사 내정자가 27일 국회 예결위원장실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보스턴 소방청장은 2001년 소방대원들의 병가가 월ㆍ금요일에 몰리는 것을 보고 무제한 유급 병가를 연간 15일로 제한했다. 이를 초과하면 급여에서 삭감했다. 예상과 달리 이듬해 병가는 총 1만3,431일로 전년의 6,432일보다 배 이상 늘었다. 상벌(賞罰) 인센티브가 정반대 효과를 낸 것인데, 현실에서 흔히 보는 정책 실패다. 인센티브의 역효과는 불쾌한 메시지를 담거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때 생긴다고 경제학자 새뮤얼 보울스는 요약한다(‘도덕경제학’). 소방청장의 잘못은 소방대원을 불신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 고전경제학은 합리적 개인이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않다. 다른 전제에서 출발한 행동경제학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지만 다수는 호의를 호의로 돌려줌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호혜성, 공익에 대한 기여도는 시장경제가 안착된 사회일수록, 법치와 사회적 평등이 높은 사회일수록 높다는 비교문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의 정책 입안자도 고려해야 할 연구들이다.

□ 긴급재난지원금의 자발적 기부는 이런 점에서 흥미로운 실험이다. 기부를 정책 수단으로 삼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국회가 합의하면 기획재정부는 “우리는 반대했었다”는 알리바이가 아니라 이를 성공으로 이끌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기부 절차는 단순해야 할 것이다. 부분 기부도 가능하다면 좋겠다. 나눔을 실천하려는 이들은 저소득층에 많기 때문이다. 삶의 어려움은 경험한 이들이 더 잘 안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고소득층 30%, 세액공제 15%를 강조하다 ‘돈 많으면 토해내라’는 식으로 비쳐져선 안 된다.

□ 긴급재난지원금 자발적 기부 메시지의 핵심은 ‘경제위기를 함께 넘자’는 취지에 있어야 한다. 정부는 재정 4조원을 아끼려 노력한 만큼 14조원을 풀어 얻고자 한 목표를 잊어선 안 된다. 자발적 기부의 성과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기대할 점은 있다. 현재 국민의 연대감과 시민의식이 상당히 고조돼 있다는 사실이다. 마스크를 나누고, 자원봉사를 하고, 의료진을 격려해 온 국민은 기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 보울스는 이렇게 썼다. 부정직한 자들을 전제로 법을 만들면, 법이 사람들을 부정직하게 만든다.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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